“죽비 맞았다”니 청와대가 절간인가?

입력
2021.05.17 18:00
26면
부동산 민심 ‘죽비’ 비유는 안이한 느낌
국민 고통 느낀다면 어정쩡한 후퇴 안돼
정책 표류 막을 결연한 입장과 의지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민심 이반과 4·7 재·보선 참패를 두고 “죽비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 이은 기자회견에서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게 됐다”며 “(재·보선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어설픈 비유는 비례(非禮)다. 전국 800만 무주택 가구의 내 집 마련 꿈이 졸지에 좌절되고,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가 붕괴됐으며, 전ㆍ월세난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이 증폭돼 사회통합을 되레 후퇴시킨 미증유의 정책 파탄이다. 그로 인한 엄청난 국민적 고통에 대해 대통령이 “죽비 맞았으니, 정신 차리겠다”는 식의 한가한 비유를 쓴 건 듣는 국민을 더욱 허탈하게 만든다. 마치 “더 많은 회초리를 맞겠다”며 가당찮게 구는 조국씨를 보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더 걱정스러운 건 대통령의 어정쩡한 메시지다. 총론은 그럴듯한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헷갈리는 얘기가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 엄중한 심판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고 보완하는 노력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리곤 “다만 기존 정책 기조는 유지하되, 실수요자 피해나 부담을 더는 부분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입장을 냈다.

대통령으로서는 분명한 메시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메시지는 선승의 법어처럼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선문답이기 십상이다.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임기 끝까지 투기를 뿌리 뽑고,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를 끝내기 위한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정책 보완은 불합리한 선의의 피해를 줄이는 데 국한될 것이다”라는 입장을 결연히 표명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부동산 민심의 축은 크게 봐서 두 갈래다. 한 축은 종부세 기준인 공시가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고, 다른 한 축은 그런 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가진 사람들은 공시가 현실화든, 보유세 인상이든, 도심 공공개발이든 하여간 이 정부가 하는 부동산 정책은 전혀 마음에 들 수가 없다. 그들은 “집값 내가 올려 달랬나. 정부가 올려놓곤 세금만 더 뜯어간다”는 불만이 그득하다.

반면, 그런 집을 못 가진 사람들은 일단 이 정부 들어 줄잡아 40%나 오른 집값을 원상회복하라는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정부 믿다가 ‘벼락거지’됐다”는 청와대 게시판 글이 바로 민심이라고 봐도 큰 오차가 없다. 특히 LH사태 같은 등잔 밑의 투기 비리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정부에 대해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상태다.

대통령은 두 갈래 민심 중에서 어느 쪽에 우선해 정책을 펼지를 분명히 정하고 관철하겠다는 결단을 강조했어야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과속인상 때 합리적 비판까지 철저히 외면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두루뭉술하게 양다리를 걸치는 태도를 취한 셈이 됐다.

그 결과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바와 같다. 내년 대선을 의식한 여당에서는 정책 일관성이나 타당성 같은 건 차치하고 일단 민심부터 달래놓고 보자는 식의 부동산 선심책이 중구난방으로 나돌고 있다. 그중엔 종부세 기준을 12억 원까지 올리자거나, 6월 시행 예정인 양도세 중과 시기를 유예하자며 자칫 기존 부동산 정책 기조까지 뒤흔들 얘기들까지 번지고 있는 중이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지금도 정부가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분양원가공개, 분양가상한제, 후분양제 등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집값 안정책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합리한 피해를 줄이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대통령에겐 부동산 정책에서의 승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더 절실해 보인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