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신도시 개발을 전담하는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고위공무원이 국가산업단지 인근 부지를 매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근 세종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전 행복청장의 토지 매입과 ‘닮은꼴’로 세종시 개발 과정을 꿰뚫고 있는 행복청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행복청은 국토교통부 소속 정부기관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만든 특수 관청이다.
1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복청 소속 과장 A씨의 배우자는 2017년 9월 세종시 연기면 연기리 농지 1,073㎡를 지인과 함께 공동으로 4억8,700만 원에 매입했다. A씨 배우자는 농지를 매입한 날 지인 명의로 해당 농지를 담보로 2억5,000만 원 정도를 대출 받았다.
A씨 농지가 위치한 연기리는 세종 스마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는 연서면 와촌·부동리 인근으로 투기 과열이 우려되는 지역으로 꼽힌다. 해당 지역 주변은 행복청 주관 사업인 ‘행복도시(세종시 신도시)~조치원 연결도로 확장사업’을 통해 간선급행버스체계(BRT) 차로가 확보된 값어치 있는 농지로 분류되고 있다. 또 연기비행장 이전 사업에 따른 신도시 외곽순환도로 선형 개선 부지 확보 사업이 추진되면서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2018년 12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16일 찾은 A씨 배우자 명의의 농지는 옥수수, 강낭콩, 상추, 파 등 초록 작물들이 비를 맞으며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다. 컨테이너가 설치된 농지 앞에는 ‘어린이집 체험농장’이라는 팻말이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팻말에 적힌 내용과 달리 A씨 배우자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농지 임대차계약도 맺지 않은 60대 마을 주민이었다. A씨 인근 농지에서 고추농사를 하는 김모(83)씨는 “땅 주인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어린이들은 다른 실습지에서 체험학습을 한다”면서 “2017년 말부터 1년 정도 땅을 놀리고 있다가 이후 '임씨'라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김씨 말은 사실이었다. 마을을 수소문해 만난 임모(67)씨는 주변 친척으로부터 A씨 농지를 소개받아 농사를 짓고 있었다. '땅 주인을 본 적 있냐'는 질문에, 임씨는 “수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가 지난 3월 말 밭고랑을 갈고 있을 때, 한 남성이 다가와 자신을 땅 소유주라고 소개했다”면서 “갑자기 필요한 일이 생겨서 밭 한두 고랑 정도 쓰겠다고 하더니 어느새 팻말이 꽂혀 있었다”고 밝혔다.
임씨 말처럼 수년째 임대차계약도 맺지 않은 채, ‘진짜 농부’가 땀 흘려 농사를 짓던 A씨 배우자 농지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린이집 체험농장’으로 급히 바뀐 흔적이 역력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지난달 중순 당시의 A씨 농지 전경 사진에는 이날 보였던 팻말이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 증언과 사진 등을 종합해보면, 지난 3월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농지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A씨 측이 임시방편으로 팻말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4년 가까이 농지를 구매하고도 경작하지 않고 임대차계약도 맺지 않았다면 농지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청 안팎에선 이번 투기 의혹이 극소수 공무원의 문제가 아니고 조직적 투기 행위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A씨 측의 농지 매입 과정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이미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를 받고 있는 전 행복청장 B씨의 행태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A씨 배우자가 매입한 농지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B씨와 매입 시기가 비슷했고 매입 이후 개발 호재가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B씨 농지와 불과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지리적으로도 가까웠다.
A씨가 농지 매입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개발 관련 내부정보를 알 수 있는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점 역시 B씨 사례처럼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높다. 국토부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행복청 공무원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행복청은 A씨 배우자의 농지 투기 의혹에 대한 본보 취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관련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한국일보에 “부동산을 운영하는 지인 추천으로 샀을 뿐, 사전 정보를 갖고 농지를 매입한 것은 아니다"고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