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고, 농구만 생각했습니다.”
안양 KGC인삼공사 오세근(33)은 팀 내 역사이자 명실상부한 KBL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다. 2012년 구단 첫 우승을 이끌며 신인왕, 챔피언전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었고, 2017년에는 정규리그·챔피언전 통합 우승을 이뤘다. 역시 이때도 MVP는 오세근 차지였다. 그리고 2020~21시즌 포스트시즌 10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이루며 3번째 우승 반지를 꼈다.
14일 경기 안양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오세근은 “예상치 못했던 우승이어서 감회가 남다르다”며 “좋은 외국인 선수의 도움이 있었고 운도 따랐던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오세근은 “첫 우승 때는 이기자는 생각만 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선수들이 좋아 어느 정도 기대했다”며 “이번에는 정규시즌을 힘들게 치르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했다. 10연승을 기록하며 우승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예전에 우승 반지 5개를 끼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 절반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오세근은 정규리그 2라운드 막판 3경기를 쉴 정도로 부진을 겪기도 했지만 6강·4강 플레이오프, 챔프전에서 이를 극복하고 우승에 결정적 역할(챔프전 평균 20.0득점, 6.3리바운드)을 했다. 첫 우승 당시 성적(17.5득점, 5.3리바운드)을 능가하는 활약으로, 이번 챔프전 MVP 투표에서도 제러드 설린저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설린저 또한 오세근을 NB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팀 던컨에 비유하며 “농구 지능이 정말 뛰어난 스마트한 선수다. 자리싸움에서 오픈 기회를 잘 찾는 부분에서 베테랑의 모습을 봤다”고 치켜세웠을 정도다. 오세근은 이런 칭찬에 고개를 저으며 “설린저는 NBA에서 활약한 선수답게 코트를 읽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본래의 임무인 빅맥 역할 뿐만 아니라, 선수 간 조화를 중시해 팀이 완전히 달라질수 있었다”고 설린저에게 공을 돌렸다.
“첫 우승은 롤 모델이었던 김주성 선배가 계신 DB를 꺾고 했는데, 당시에는 거침없었고 프로 첫 시즌이다 보니 기쁨이 어느 때보다 컸다”는 오세근은 “이번에는 비시즌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부침을 겪으며 출전시간이 줄었고 심지어 못 뛰는 날까지 생기다 보니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느덧 나이가 당시 노장이라고 여긴 김주성 선배보다 더 들어 마음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 플레이오프에 임하면서 한 결심은,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머리를 비우고 농구만 생각하자는 거였다”며 “정리가 되다 보니 플레이도 조금씩 풀렸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농구선수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성숙해졌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오세근은 몸 상태를 우려한 시선에 대해서는 “타 시즌에 비해 심각한 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기존 외국인선수가 정통 포스트가 아닌 포워드 활동을 하다 보니 역할이 겹치기도 했고, 골 밑에서 궂은일을 해야 하기도 했다. 팀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론 조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세근은 중앙대 2학년 재학시절 국가대표로 선발돼 일찌감치 서장훈, 김주성을 잇는 특급 토종 빅맨 자리를 꿰찼다. 2014년 출전한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주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여파로 발바닥부터 발목, 무릎, 어깨 등에 큰 부상을 입어, 팬들은 오세근이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걱정이 앞선다.
오세근은 수술 자국이 선명한 오른쪽 발목을 보여준 후 왼발을 들어 보이며 “발목 인대가 끊어져 몸을 지탱해주지 못하다 보니 오른발로만 서 있을 수가 없다. 무릎은 연골이 거의 닳아 뛰다 보면 통증이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농구가 개인 종목처럼, 자신의 기록만을 구현하기 위한 스포츠였다면 난 벌써 끝났을 것”이라며 “지금은 예전 수준의 운동능력을 보일 수는 없지만, 대신 여러 노련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오세근은 “팀 전술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명확하게 역할만 부여해준다면 거기에 맞춰 진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농구에서 모든 것을 이룬 최고 선수답지 않은 의욕이다.
오세근은 “쌍둥이인 첫 아이가 6살인데, 아빠가 농구선수인 것을 알고 있다.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면서 “중학교 때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설렘으로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한다. 앞으로도 지켜봐 달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