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움직임에 비판을 제기했다. 종교가 정치에 과도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개신교계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최고성직자인 염수정 추기경까지 지난달 담화문을 발표해 차별금지법에 담긴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문제 삼는 상황(본보 4월 21일 보도)에서 장 의원이 법안의 발의자로서 교리와 정치의 경계를 명확히 한 것이다.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장 의원은 기독교계에 차별금지법에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이제까지 보수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입법을 조직적으로 저지해왔다”면서 “가톨릭에서 중요한 리더십(지도력) 위치에 있는 염 추기경이 (법안 내용이) 보편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 것에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담화문에는 동성애 성향을 타고났어도 행위는 선택 가능하니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교리에 기반을 둔 것이다. 장 의원은 "성별정체성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장 의원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성별정체성과 행위는 분리할 수 없다"면서 "성별정체성은 인간으로서 어떤 대우를 받을지에 대한 문제여서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개신교계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을 비롯해 개신교계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목사가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해도 형사처벌을 당한다는 주장이 퍼져있다. 거리에서 동성애 관련 부정적 발언이 불가능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서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은 상식적인 법”이라면서 개신교계 일각에서는 법안을 알지도 못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에서 형법이 적용되는 조항은 보복조치를 처벌하는 것 하나뿐”이라면서 “차별행위 자체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제56조는 차별을 당한 사람이 구제 절차를 밟는 동안, 사업자가 해고 등의 보복조치를 가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어서 장 의원은 “(법안을 만들 때 쓰는) 단어들에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법적 의미와 다르다”면서 “법안은 상식에 부합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설교행위는 (법안이 처벌하는 차별적) 광고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시한 채, 단어만을 문제 삼아 법안의 부작용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이다.
차별금지법이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법제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답변했다. 장 의원은 “법안에 담긴 차별금지 사유만 23개”라면서 “다양한 기본권을 다루는 법안을 동성혼 법제화 교두보라고 비판하는 것은 답정너”라고 반박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반대 논리라는 이야기다.
염 추기경이 담화문에서 언급한 동성가족의 입양, 인공적 기술을 이용한 임신 역시 차별금지법이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고 장 의원은 설명했다. 장 의원은 “모든 것을 차별금지법을 통해 규율한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면서 “재화와 행정서비스의 이용에 대한 차별을 규정한 조항이 있지만 차별금지법이 모든 법의 상위법은 아니다. 기승전-차별금지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이 개인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까지 법으로 규제한다면 자유가 억압될 뿐만 아니라 직장 등에서 법적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이에 대해서 장 의원은 자유가 중요한 만큼,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규제 역시 존재한다고 답했다. 기본권이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나누면서 등장하긴 했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이 개인의 관계까지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반론이다. 장 의원은 노동법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가 근로기준법을 자연스러운 규범으로 받아들였듯이 차별금지법도 공적 영역에 있어서의 차별에 개입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장 의원은 또 “종교적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 종교계가 교리로 (타인을) 분리하면 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면서도 “종교 법인이 운영하는 학교, 국가 재정을 통해서 운영하는 사회복지단체처럼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교리를 내세워서 다른 시민을 차별한다면 문제”라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종교 법인의 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가 공공의 재원으로 운영하는 기관임에도 과도하게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는 행위”라면서 “대한민국에서는 세금을 사용할 때 성소수자를 차별하라고 돼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개신교계에는 교회나 조직이 인력을 채용하거나, 시설을 임대하면서 종교 또는 성적지향을 기준으로 삼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가 크다. 장 의원은 애초에 우려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답했다. 장 의원은 “(종교계에서) 지금도 성소수자를 많이 채용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제가 성소수자인지 기자는 겉으로 보고 알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장 의원은 "국회의원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성소수자 차별 때문에 (종교계에) 성소수자가 근무해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성소수자는 교단은 물론, 목회자들 가운데도 이미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을 왜 분리하고 배제해야 하는가? 이미 일하고 있다면 뭐가 문제인가? 애초에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주제”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기독교계가 느끼는 두려움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법안이 나의 자유를 얼마나 제한할지 불안함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 “불안한 만큼 정확한 정보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일각의 반대 여론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왜 14년 동안 법을 만들려고 했는지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밝혔다.
다만 법안이 실제로 작동하기 이전에는 입법자라도 모든 사안의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장 의원은 설명했다. 장 의원은 “(주변에서) 구체적 사안을 들고 와 위법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면서 “입법자로서는 (법을 만들 때) 법률이 제한하는 대상을 작지 않게, 적당한 덩어리로 설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실제로 차별이 일어난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안을 폭넓게 파악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해서 구체적 사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가톨릭과 개신교 안에서도 차별금지법에 힘을 보태는 분들도 많다”면서 “그런 목소리들이 주목을 더욱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인권위 조사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이후로 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난 차별의 대상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종교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면서 "초기 집단감염이 교회와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나타났기 때문인데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상황에서 교인을 보호하는 기제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이후 1년 가까이 국회에 논의되지 못한 상황을 두고 장 의원은 “국회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여러 오해가 방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적인 토론장인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가짜뉴스들이 발붙일 곳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장 의원은 “여당에서 법안을 발의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국민입법청원이 곧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중대기업처벌법이 양당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결국 통과됐듯 차별금지법도 국민의 힘을 받고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한 사회적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다. 2007년부터 5차례 이상 국회에 발의됐다. 장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법안은 가장 포괄적으로 차별을 정의했다. 성별, 장애는 물론이고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23가지 사유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나이부터 종교, 사상, 가족 형태, 병력, 학력까지 다양한 사유를 포함하고 있다. 23가지 사유를 이유로 고용은 물론, 재화와 행정서비스의 이용과 교육기관의 교육 등에서 특정인을 분리하거나 배제할 경우,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할 수 있다. 시정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시정권고에 대한 이의신청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