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7일째 무력 충돌 중인 이스라엘군이 미국 AP통신과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방송 등 외신들이 입주한 가자지구 내 12층 건물을 폭격했다. 알자지라는 “인명 살상을 은폐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유엔도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가 더 심각해질 거라고 경고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작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15일(현지시간) A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AP 등 다수 외신 언론사가 현지 사무실로 이용하는 12층 규모의 ‘잘라 타워’가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이스라엘군은 폭격 뒤 “하마스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저의가 있다는 게 언론의 의심이다. 게리 프루잇 AP 사장은 이날 낸 성명에서 “충격과 공포를 느낀다”며 “세계는 이 일로 가자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적게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을 생중계한 알자지라의 왈리드 알오마리 이스라엘 지국장은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이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진실을 목격하고 기록ㆍ보도하는 언론을 침묵시키려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비판했다. 앞서 잘라 타워 건물주는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미리 폭격 통지를 받고 입주사들에 대피할 것을 주문했다.
멈추지 않는 양측 교전으로 가자지구는 엉망이 돼 가고 있다. 유엔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 상황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14일 유엔 공보국에 따르면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공방으로 가자지구에서 집을 잃은 팔레스타인 피난민이 이미 1만여명이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닷새간 인구 밀집 지역의 공동주택이 200곳 넘게 파괴됐다.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은 학교나 이슬람 사원(모스크) 등 다중밀집시설에 수용돼 있는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정책 탓에 가뜩이나 열악한 여건이 더 악화한 상태다. 식수와 음식 부족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가 겹쳤다. 전기도 곧 끊길 것으로 보인다.
주말인 15일 유럽 곳곳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렸다. 영국 노동당 다이언 애벗 의원은 런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영토를 빼앗겼고 이제 집에서 살해당하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약 2,500명이 시내 푸르타 델 솔 광장에 모여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충돌은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외쳤다.
카타르는 하마스 편이다. 압둘라흐만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이 하마스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를 도하에서 만나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시민들에 대한 가혹하고 반복되는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태도는 여전하다. 그는 이날 대국민 TV 담화에서 “이번 충돌에 책임이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이라며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뒤에 숨어 고의로 그들을 해치는 하마스와 달리 우리는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테러리스트를 직접 타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했다. 현재 실각 위기에 놓인네타냐후 총리가 이번 사태에 편승, 일종의 ‘전시 내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두둔한다. 미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해 하마스와 다른 테러 단체들의 로켓 공격에 맞서 스스로 방어할 이스라엘의 권리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거듭 확인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도 통화했는데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 발사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10일부터 이어진 대규모 충돌로 이날 현재 팔레스타인에서는 어린이 41명을 포함해 145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고, 이스라엘에서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
이번 분쟁은 7일 동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 간 충돌이 계기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경찰의 철수를 요구하며 10일 오후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해 가자지구를 공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