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놓쳐도 실종... 매일이 불안한 발달장애인 부모 

입력
2021.05.19 04:30
6면
<3> 안전: 하루라도 맘 편히
자극에 반응해 맹목적 이동… 차도로 뛰어들기도
연간 8270명 실종돼 45명 숨져, 가족엔 비난 쇄도
"발달장애 특성 고려한 실종 대응 체제 마련돼야"

편집자주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의젓한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정책적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건 가족의 안간힘이다. 국내 장애인 규모가 등록된 인원만 해도 262만 명이니, 이들을 돌보는 가족은 못해도 1,000만 명을 헤아릴 터이다. 장애인 가족의 짐을 속히 덜어주는 것만큼 시급한 국가적 과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일주일 내내 붙어 있었으니 안심하냐고요? 한 주 무사했으니 다음 주에 사고 나지 않을까,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아침 햇볕이 따가워진 5월. 열여섯 살 우성이(가명)는 오전 8시 40분 엄마 손을 잡고 등굣길에 나섰다. 세 돌 때 자폐 1급 판정을 받은 우성이는 2017년부터 경기 성남시의 공립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얌전히 책가방을 멘 모습이 얼핏 의젓해 보였지만, 엄마 이주현(54)씨는 집을 나서자마자 긴장한 얼굴로 우성이의 팔짱을 끼거나 어깨를 감싸안는 등 아들 단속에 여념이 없었다. 여느 발달장애 아이들처럼 눈 깜짝할 새 아이가 8차선 대로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탓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20여 분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선생님에게 아이를 넘기고 나니 하교 시간인 오후 1시 40분까지 5시간가량 남았다. 그러나 이씨가 향한 곳은 집도 카페도 아닌 학교 구석 벤치였다. 언제 또 아이가 사라지거나 다쳤다는 연락을 받을지 모르기에, 매번 이곳에서 점심도 거른 채 우성이를 기다린다. 이날 이씨는 부어오른 발목에 파스를 뿌리고 장애 아동 관련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때웠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들러 약을 타고 미술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니 엄마는 하루 종일 쉴 새도, 긴장을 놓을 틈도 없다.

발달장애인의 야외 활동엔 늘 실종 위험이 따른다. 우성이는 잦은 실종과 가출로 이미 지역구 유명인사다. 최근 10년 동안 관할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넣은 기록만 97차례에 달한다. 이씨는 뉴스에서 발달장애인 아동의 실종·사망 보도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아이가 살아서 옆에 있는 것이 천운일 정도예요. 오늘 오전 시간을 무사히 넘겨도 오후에 돌발 행동을 할까 늘 불안해요.”

가둘 수도 풀어줄 수도 없는 삶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삶은 ‘팔짱’과 ‘자물쇠’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집 밖에 나오면 모든 것이 아이에겐 자극과 소음이다. 치매 노인이 기억이 온전치 못해 길을 잃는다면, 발달장애인은 특정한 연상에 이끌려 무작정 이동하다가 실종되곤 한다. 엘리베이터에 생각이 한번 꽂히면 온동네 엘리베이터를 찾아다니는 식이다. 이러니 행동 반경을 예측하기 힘들고, 더구나 우성이처럼 돌발 행동이 심하면 활동보조사마저 기피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책임은 부모 몫이 된다.

우성이는 네 살 때부터 집을 뛰쳐나갔다. 설거지를 하느라 잠깐 눈을 떼면 나가버리는 식이었다. 이 집 현관문에 자물쇠가 채워진 이유다. 한글을 떼고 난 뒤 우성이는 편의점이나 슈퍼 간판에 예민하게 반응해 곧장 도로를 가로지르는 버릇까지 생겼다. 지방간으로 체중이 100㎏ 넘게 불어난 아들을 엄마는 다루기 힘겹다. 손을 잡고 있어도 홱 뿌리치고 달려나가면 그대로 잃어버리기 일쑤다.

엄마는 이사 다닐 때마다 우성이를 데리고 집 근처 마트, 편의점, 미용실을 찾아다니며 인사시킨다. 동네 사람들에게 우성이 존재를 각인시키면 아이를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저희 아들이에요. 발달장애아라 집을 자주 나가고 잃어버립니다. 혼자 돌아다니거나 가게로 뛰어들어오면 제게 전화 주시고 잠시만 맡아주세요." 간곡한 부탁에도 모든 가게 주인이 우성이를 챙겨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주민 제보 전화로 아이를 찾은 경험이 꽤 있다"며 감사해했다.

한 번 놓치면 모든 것은 부모 책임

장애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는 쏟아지는 질책에 두 번 운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왜 아픈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녔냐"는 식의 비난이 쇄도한다. 다름 아닌 가족끼리 이렇게 책망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씨는 "산책, 시설 치료, 병원 외래 등 발달장애인이라 밖에 나갈 일이 비장애인보다도 많을 정도"라며 "특히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정기적인 산책은 자해나 추락 등 집안 내 문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경기 고양시에서 실종됐다가 3개월 만에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발달장애인 A씨의 가족도 차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데 마스크 착용을 견디지 못하는 A씨 때문에 엄마는 늘 인적 드문 산책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걸 모르고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 데리고 간 게 잘못이다" "왜 금방 쫓아가 붙잡지 않았냐"고 나무랐다.

A씨 엄마가 겪을 상황을 잘 아는 이씨는 실종 기간에 그에게 위로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자신이 아는 실종 대응 지침을 공유했다. 하지만 A씨의 생사가 확인된 직후 두 엄마의 연락은 끊겼다.

매년 8000명 실종되는데 '맞춤 대응' 없어

최근 5년간 연평균 8,277명의 발달장애인이 실종됐고 그중 45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상황이 이런 데도 발달장애인에 특화된 실종 대응 체계는 여태 수립되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는 배회기(위치추적기)만 해도 최근까지 치매 환자에게 우선 배정되고 남은 물량이 발달장애인에게 돌아왔다.

우성이의 경우 지금껏 100회 가까운 실종 신고를 했지만 정작 경찰을 통해 찾은 경우는 10%가 채 되지 않는다. 특히 2019년 우성이가 서울 왕십리에서 실종됐을 때 경험한 경찰의 대응은 엄마 이씨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거주지인 성남을 벗어나 아이를 놓친 경우는 처음이라 이씨는 패닉 상태로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이씨는 신고 직후 5장짜리 경위서부터 작성해야 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자식과 평소 관계는 어떤지' '아이를 때린 적은 없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 엄마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장애 아동 실종이 부모의 학대나 유기와 관련 있는지부터 파악하려는 의도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조사가 아이를 찾아나서는 일보다 시급하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의 행동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일반 실종아동 전담팀이 폐쇄회로(CC)TV 기록에 의존해 아이를 찾으려 하는 것도 미덥지 않았다. 이씨는 "발달장애인은 짧은 시간에도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데, 경찰은 영상에서 단서가 나올 때까지는 소수 인력으로 근방을 순찰하는 것이 다였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별도의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는 현행 체제를 적극 활용해 발달장애인 실종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A씨 실종 사건 당시 A씨 어머니를 도왔던 이나리 경기도발달장애인복지협회 사무국장은 "장애인은 실종 첫날 사망 위험이 높지만, 지금의 경찰 실종전담팀 운영 방식은 수색 초기에 여러 명을 한꺼번에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제도 개선만큼 중요한 것은 모든 발달장애인 가족이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