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TV드라마 강국이다. 터키 시장조사회사 코넥시오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터키 드라마는 75개국에 수출됐다. 전 세계 4억 명이 터키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동 국가와 발칸 반도 국가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드라마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도시 이스탄불은 중동 국가와 발칸 반도 국가 국민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힌다.
터키가 드라마 왕국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 20위권 경제 규모에 8,500만 명가량의 인구가 성장 토양을 마련해줬다. 중동과 발칸 지역을 지배했던 오스만제국의 유산이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나 시장 규모만으로 터키 드라마의 해외 인기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라크 방송계에서 일하는 지인은 ‘표현의 자유’를 들었다. 국민 99%가 무슬림인 터키는 중동 주변국과 달리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 국가다. 드라마 속 애정 표현이나 폭력 묘사에 있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일본 경제 일간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일 ‘한국 엔터테인먼트는 왜 강한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아시아 문화의 첨단이라면 일본이었는데 왜 역전됐는지' 이유를 찾는 기사였다. 서장호 CJ엔터테인먼트 상무, 니시모리 미치요(西森路代) 작가, 이향진 릿쿄대 교수, 와카바야시 히데키(若林秀樹) 도쿄이과대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강점을 찾으려 했다. "비판할 수 있는 문화"(니시모리 작가), "팬들이 대중문화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한국적 풍토"(이향진 교수) 등 고개가 끄덕여질 분석이 따랐다.
한국이 대중문화 강국이 되기까지는 여러 변수가 작용했다. 그중 가장 결정적인 변수를 꼽으라면 1996년 10월 영화 사전 심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들고 싶다. 이전까지 영화를 상영하거나 공연을 무대에 올리려면 공연윤리위원회(공륜)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음반 역시 공륜 심의를 거친 후에야 발매가 가능했다. 공륜이 내준 ‘심사합격증’이 없으면 영화 상영도, 연극 공연도, 음반 판매도 불법이었다.
공륜 위원장은 정부가 임명했다. 반체제 성향이 강한 영화나 연극은 대중과 만나기 어려웠다. 자연히 자기검열을 거친 영화나 공연,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창작 의욕 역시 꺾이기 마련이었다. 위원장의 성향이 심의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 영화 ‘신의 아그네스’는 반가톨릭 성향이라는 이유로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고, 중광 스님의 기행을 그린 한국 영화 ‘허튼소리’는 열두 군데나 가위질을 당한 뒤에야 개봉했다.
사전 심의가 폐지되고 1998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연령별 등급제도가 도입됐다. 법적으로 내용 때문에 상영 또는 상연이 불가능한 영화나 공연은 없게 됐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연령 제한만 있을 뿐이다.
1980년대 홍콩 영화는 전성기를 누렸다. 작은 내수시장을 넘어 아시아 시장을 호령했다. 자기복제에 따른 질 저하 등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쇠락했다. 1997년 중국 반환에 따른 악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중국 통제하에 있는 홍콩 영화가 언젠가 옛 영광을 되찾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류는 1990년대 후반 시작됐다. 홍콩 영화가 몰락하고, 사전 심의 폐지로 한국 대중문화가 날개를 달 때다. 공륜이 존치됐다면 K컬처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만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