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입양아가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 양부모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양모는 정인이가 숨을 거둔 당일 때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망할 수 있다는 인식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양모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이상주)는 14일 살인 및 상습아동학대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모 장모(35)씨에게 무기징역을, 아동학대 및 유기·방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부 안모(37)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안씨는 선고 직후 법정구속됐다. 앞서 검찰은 장씨에게 사형을, 안씨에게는 징역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정인이는 사망 당시 키 79㎝, 몸무게 9.5㎏으로 자신에 대한 방어 능력이 전혀 없었다. 16개월 여아의 생명 유지에 중요한 장기가 모여 있는 복부를 발로 밟으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조차도 충분히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장씨가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 복부에 강한 둔력(뭉툭한 것으로 넓은 부위에 가해진 힘)을 가해 췌장이 절단되고 장간막이 파열되면서 복강 내 다량의 출혈이 발생한 결과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검찰은 처음엔 장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후 살인 혐의로 공소사실을 변경했다. 재판부가 장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데에는 부검 재감정 결과와 법의학 전문가들의 분석 등이 영향을 미쳤다.
장씨는 정인이가 밥을 먹지 않아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복부를 때린 것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인이를 들고 흔들다가 가슴수술로 인한 통증으로 놓치는 바람에, 정인이가 의자에 부딪히며 떨어져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추락으로 등 쪽에 충격이 가해져 췌장이 절단되려면 척추 뼈가 골절돼야 하나 정인이 척추에는 골절이 없었고, 다섯 차례 재연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정인이 상태를 인지하고 장씨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지식으로 배를 압박하면서 사망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 정도 외력으론 췌장 절단 및 장간막 파열이 발생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복부에 멍이 없고 다른 장기가 파열되지 않은 정황을 고려할 때, 수술 후유증으로 손을 사용하기 어려웠던 장씨가 누워 있는 정인이 배를 적어도 2회 이상 발로 밟아 둔력을 가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씨와 안씨에게 제기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였다. 장씨는 상습아동학대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부검을 통해 발견된 일부 골절상에 대해선 '넘어지거나 부딪혔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기 어려운 손상"이라고 설명했다. 양부 안씨는 아내의 폭행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해오다가, 이날 선고에 앞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살인죄의 경우 기본 양형을 기준으로 보통 징역 10~16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재판부는 반인륜·반사회적 범죄로 사회와 격리하는 가중처벌이 필요하다고 보고 장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인이가 보호와 양육이 필요한 무방비한 아동임에도 분노 표출의 대상으로 삼은 점, 신체적·정서적 학대 끝에 살해까지 하게 된 범행의 잔혹성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