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4일 서울남부지법 앞에는 재판 시작 4시간 전부터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 수십명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다' '입양모 살인죄 처벌·법정 최고형을 요구합니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채 서 있었다. 생전 정인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초상화도 법원 주변에 나란히 설치됐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정인이 영정을 들고 있던 일부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법원 정문 양쪽에는 근조화환 수십개가 일렬로 놓였다. 미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 외국 국적 '엄마들'도 화환을 보내왔다. 화환에는 '이젠 편히 쉬렴' '사랑한다, 정인아' 등의 문구가 담겼다.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 신소영(49)씨는 "함께 슬퍼해줄 사람이 없는 정인이를 위해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 왔다"며 "법원이 전혀 죄책감도 없는 양부모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다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부천에서 왔다는 손윤정(40)씨도 "정인이보다 고작 몇개월 어린 18개월 아기 엄마로서 충격을 받아 며칠간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며 "과거 판례를 근거로 엄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아동학대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처음 집회에 참가했다는 동갑내기 부부 전희정·임대건(36)씨는 "그 동안 아동 학대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가 생기면서 정인이 사건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분노하게 됐다"며 "너무나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사건인 만큼 재판부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연차를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양부에 대한 검찰의 구형량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참가자도 있었다. 김모(34)씨는 "사실상 함께 정인이를 학대했는데 검찰의 7년 6개월 구형은 너무 적은 거 아니냐"며 분노했다.
오후 들어 참가자들이 늘어나면서 법원 앞에는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운집했다.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온 참가자가 있었을 정도로 1심 마지막 재판을 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모여든 셈이다. 경찰은 이날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현장에 기동대 11개 중대 800여명을 투입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방역 수칙을 위반했다며 집회시위법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해산 명령을 내렸지만, 참가자들은 자리를 지킨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후 1시 35분쯤 정인이 양모인 장모(34)씨가 탄 호송차가 법원에 들어서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은 호송차를 향해 피켓을 치켜들며 "양부모 사형" "정인이 살려내라" 등을 계속 외쳤고 일부는 오열하기도 했다.
오후 2시 50분쯤 재판부가 정인이 양모 장씨에 무기징역을, 양부 안씨에 징역 5년을 선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떨구거나 "정인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소리(41)씨는 "사형이 선고되지 않아 속이 후련하지 않다"며 "양부모가 항소해도 끝까지 싸우고 정인이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수진(36)씨는 "아이가 온몸이 부서지는 끔찍한 고통 속에 죽었는데 그걸 지켜본 양부는 고작 5년 징역을 받았다"며 "정인이가 하늘나라에서 보면 뭐라고 하겠나. 나쁜 사람이 제대로 벌 받지 않는 사회를 보여줘 우리 아이한테도 부끄럽다"고 말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법원에선 최선을 다했겠지만 국민 법 감정의 관점에선 아쉬운 판결이었다"며 "무기징역은 아동학대 범죄에서 최고형인 만큼 2심과 대법원에서 감형되지 않고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 대표는 "양부도 살인 공동정범이 아닌 방임 혐의만 적용돼 다소 아쉽지만 검찰에서 추가 증거를 발견할 경우 다시 기소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