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메시지

입력
2021.05.14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자진 사퇴한 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본인이 결단을 해줘 고맙지만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도자기 밀수’라는 결격 사유가 있었는데 청와대와 여당이 서로 떠넘기다 자진 사퇴로 끝난 마뜩잖은 결말이었다. 국민에 사과할 일을 박 후보자에게 “고맙고 짠하다”니, 박 후보자는 희생자가 되고 결격 사유는 억울한 일이 돼버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뒤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 발언이 떠오른다.

□ 10일 대통령의 취임 4주년 연설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사과를 담았음에도 “성찰이 없다”는 반응을 들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은 백신 접종에 대해 "더 빠르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취약계층의 고통이 계속되는데도 “국제기구들이 (경제) 성장 전망을 일제히 상향 조정한다”고 앞서나갔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야권이나 보수 언론 등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 서운하고 억울하게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 코로나19에 대한 정부 대응에서도 메시지 관리 실패가 성과를 깎아먹은 면이 있다. 문 대통령부터 “터널의 끝이 보인다” “곧 극복할 것” “집단면역 달성 목표를 앞당기겠다”며 기대를 부풀리는 전망을 남발한 탓에 확진자 수가 늘거나면 비판이 배로 쏟아졌다. 방역과 백신 확보 등 집행은 과하게 하더라도 전망에 대한 메시지는 보수적으로 내야 할 일이다. 그랬다면 목표치에 못 미쳐도 국민 실망은 적었을 것이고, 정부는 다시 국민의 이해와 협조에 기댈 수 있다.

□ 유 전 사무총장의 말처럼 문 대통령이 비판에 너무 예민해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잘했다고 치켜세워 비판을 상쇄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 판단이 거의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을 부인하는 변명은 반감을 키우고 실정(失政)보다 과한 비판은 역풍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니 문 대통령은 억울함, 부당함을 내려놓아도 좋겠다. 최대한 겸허히 사과하고 칭찬은 남이 하도록 두는 게 낫다. 남은 1년 성공의 비법이 아닐까.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