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초유의 인사 후퇴... 무게중심 靑→여당 '서막'

입력
2021.05.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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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사퇴했다. 청와대 의중에 따른 것으로, '장관 후보자 3명 전원 임명 강행' 의지를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물러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인사와 관련해 좀처럼 양보하지 않았기에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명 중 1명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문 대통령이 끝내 수용한 셈이다. 민주당이 문 대통령의 인사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건 현 정권 들어 처음이다. 권력의 무게중심이 청와대에서 민주당으로 이동하는 중대 계기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은 박 후보자 낙마 7시간 만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의결하고, 임혜숙 과학기술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도 잇달아 채택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김 총리 후보자와 두 장관 후보자를 임명, 인사 논란 매듭 짓기에 나선다.


박준영 "내려놓겠다"... 靑 "대통령 종합 판단의 결과"

박준영 후보자는 13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자가 국회 또는 여당에서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청와대와 소통 과정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을 취했지만, 문 대통령의 '의중'이었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또 "문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구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도 했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 기한(14일)까지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인사 포기'를 결단한 데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등 남은 인사를 조속히 매듭짓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청와대의 같은 고위 관계자도 "박 후보자 사퇴를 계기로 국회 청문 절차가 신속하게 완료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례적' 결단… 靑 "고맙고 짠하다"

문 대통령이 인사를 놓고 물러선 건 매우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인사에 관한 한 국민 정서나 국회 반응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국회에 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을 한 뒤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킨 사례도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임명 강행이 야기할 후폭풍이 상당했다. 야당이 '부적격' 딱지를 붙인 3인방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면 '4ㆍ7 재·보궐선거 참패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쏟아질 터였다. 민주당에서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분출된 것도 부담이었다.

다만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등 떠밀어 결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 본인이 결단을 해줘서 고맙지만 마음이 짠하다"면서 "(문 대통령이) 국회 논의 과정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사를 강행하려다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靑 "당청 갈등 없었다"지만 무게중심은 당으로

청와대는 특히 '이번 인사에서 당청이 엇박자를 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내 여론과 대통령이 생각하는 여론의 간극은 거의 없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간 한 번도 이견이 노출된 적이 없었다"고 단언했다. 당청이 갈등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을 훼손하고,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여당 요구로 문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인사 후퇴를 했다'는 건 사실상 기정사실이 됐다. 이에 박 후보자의 낙마가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당 중심의 당청 관계 재편'을 선언한 바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의견을 내면 여당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그간 비일비재했는데, 이번 사태를 거치며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신은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