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2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형사피고인이 되면서, 자진사퇴와 직무배제를 주문하는 검찰 안팎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형사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전례가 없는 데다, 검찰 조직 전체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인사 조치에 소극적인데다, 이 지검장도 용퇴할 가능성이 낮아 자리에서 물러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형사3부장)은 이날 이성윤 지검장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수사를 방해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되는 건 이 지검장이 처음이다.
전례를 보면 현직 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를 받거나 형사재판에 넘겨지면 △검사징계법에 따라 직무집행이 정지되거나 △비수사 부서로 전보하는 '원포인트 인사'가 이뤄졌다. 한동훈 검사장도 지난해 6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 피의자로 입건되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2017년 4월 법무부 검찰국 후배 검사들과의 만찬에서 돈 봉투를 건넨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감찰을 받게 되자,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돼 면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성윤 지검장이 직무에서 배제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직무배제 권한을 가진 박범계 장관 의지가 약한 탓이다. 박 장관은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재판 절차와 직무배제·징계는 별도 제도라 별개 기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지검장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지금 물러나면 혐의를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수사팀의 기소 직후 밝힌 입장문을 통해 거취에 대한 언급 없이 "향후 재판절차에 성실히 임하여 진실을 밝히고, 대검 반부패강력부의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독직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직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는 점도 '버티기'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다만 이 지검장 거취를 두고 정권 차원에서 부담이 커지면, 이 지검장에게 결단을 요구하거나 전격적으로 직무에서 배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회 법사회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스스로 결단할 필요가 있다"고 이 지검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일각에선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취임 후 단행될 검사장 인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 지검장이 교체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제대로 수사지휘가 되겠느냐"며 "조직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