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국민들 앞에서 양심고백하고 싶다."
12일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개최한 현장 좌담회. 현직 간호사 4명이 단상에 오르더니 자신들이 불법·무면허 의료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 증언이 상상 이상이라는 걸 웅변하듯, 이들 간호사들은 모두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12년차 간호사라 소개한 A씨는 "집도의가 스케줄 때문에 수술실에 늦게 들어와서 다른 간호사와 전공의를 데리고 직접 개복하고 수술을 진행하거나 수술 중 집도의와 자리를 바꿔 나머지 수술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7년차 간호사 B씨는 "중환자실은 보호자가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라 상처 드레싱 같은 기본적인 치료뿐 아니라 동맥혈 채취까지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야간에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약사 대신 직접 약을 제조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운전면허 없는 아이에게 운전을 시키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도 했다.
이들은 모두 간호사 자격으로 병원에서 일하지만, 간호부가 아닌 '의국'에 차출이 돼 전문의 지시를 받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된 경우다. 병원에 따라 '전임 간호사' 혹은 '전담 간호사'라 불리기도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상급종합병원부터 중소형 병원까지, PA 간호사가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흉부외과처럼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곳에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지금은 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 할 것 없이 모든 과에서 PA가 활동 중"이라고 지적했다.
PA 간호사제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 업무에 대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 규정했다. 문제는 '진료의 보조'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보니, 의사가 해야 할 일이 PA 간호사에게 손쉽게 떠넘겨진다는 데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9월부터 한 달간 의료기관 22곳의 간호사 1,12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근무 중 의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한 병동 간호사는 76.0%(632명) 수준이었으나, PA 간호사는 93.4%(269명)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로 떠넘겨지는 의사 업무는 △대리 수술 △대리 조제는 물론 △대리 처방 △동의서 의무기록 대리 작성 △대리 처치·시술 등 다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사고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느냐다. 오선영 정책국장은 "의사 업무를 대행하다 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이를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다"며 "환자는 PA 간호사를 의사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 환자와 의료진 간 불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PA 간호사들은 불법임을 알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간호사 C씨는 "직속 상관인 의사가 자연스럽게 업무를 넘기는데 '이걸 왜 제가 하죠?'라고 거부하기 쉽지 않다"며 "의사가 불필요하고 과도한 업무지시로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겠지만, 당장은 좀 더 고난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 간호사제'를 도입, 할 수 있는 의료 행위와 못하는 의료행위를 명확히 구분지어주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