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핵협상 대표직인 대북특별대표를 당분간 임명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앞세우고 있는 태도와 상반되는 것으로 자칫 협상 의지를 의심 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한미 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협상 의지가 명확해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또 다른 '대북 메시지'라고 보고 있다. 대북특별대표 임명을 서두를 경우 "다급한 쪽은 미국"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12일 한미 외교가에 따르면, 대북특별대표 임명과 관련한 미 국무부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언제까지는 임명하겠다는 대략적인 시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임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 문제를 총괄하는 인사가 있는 것이 협상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상대방(북한)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비핵화 실무 협상을 총괄하는 임무를 띤 일종의 특수 임무직이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선 스티븐 비건 당시 대북특별대표가 부장관까지 겸직하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 상원 인준 절차가 필요한 정무직도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 임명할 수 있다. '잘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이라는 새 대북정책의 방향을 발표한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물밑 접촉을 시도하면서도 협상 당사자는 임명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끌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바이든 행정부가 임명을 보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대북정책 리뷰를 막 끝낸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의중을 이제 파악하기 시작한 단계"라면서 "바이든 행정부 역시 협상 본막을 열어도 되겠다 싶을 때까진 기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후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임명이 미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도 출범 이후 6개월 이상 대북특별대표직을 비워 두었다가 북미 간 싱가포르 합의 직후인 2018년 8월 비건을 임명했다.
북핵 협상을 담당했던 전직 미 고위 관리들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특별대표가 임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협상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조셉 디트라니 전 북핵 6자회담 차석대표는 11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특별대표 임명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면,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의 수용 여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놓고 있어 보인다"며 "곧 있을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도 "북한 문제에 전념할 인사가 필요하다면 그때 분명히 임명할 것"이라면서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