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4050세대가 값 올린 후 2030세대가 뛰어들었다

입력
2021.05.12 17:00
24면

편집자주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가 공동으로 뜨거운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현재 200개가 넘는 가상화폐 거래소 가운데 법에 따라 등록이 완료된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만약 등록이 안 된다면 9월에 가서 갑자기 폐쇄될 수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언론 등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하루에 20%씩 오르내리는 자산에 함부로 뛰어드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보지 않는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 줘야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한 이 발언에는 ‘가상화폐 투자 열기’에 대한 당국의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가치를 갖추지 못해 정부가 단속에 나서면 금방 사라질 것이며, 이렇게 위험한 투기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주로 철없는 젊은 세대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반 대중의 생각이 당국의 선입견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공동으로 가상화폐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 등을 빅데이터 분석했다.

우선 네이버 데이터랩을 활용해 가상화폐(비트코인, 암호화폐, 가상자산 등 포함) 관련 검색량을 2017년 1월 1일부터 2021년 5월 8일까지 추출했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시스템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어와 ‘금융위원장’을 포함하는 기사를 2017년 5월~2018년 5월까지 672건, 2020년 10월~2021년 5월까지 629건 추출 분석했다. 또 닐슨코리아의 버즈워드 시스템을 이용해 2020년 10월 1일부터 2021년 5월 8일까지 가상화폐 관련 지식검색 4만5,216건, 뉴스 댓글 13만9,550건을 분석했다.

먼저 가상화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시작된 2017년 이후 관련 기사 검색량 추이를 살펴보니 검색량이 증가한 기간은 ‘1기’(2017년 5월~2018년 5월)와 ‘2기’(2020년 10월~현재)로 나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각종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한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과연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에서 더 높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 금융위원장의 짐작은 절반만 맞았다. 관련 기사를 검색한 사람을 연령별로 나눠보니, 1기에는 20ㆍ30대보다 40ㆍ50대의 비중이 6 대 4 비율로 컸다. 2기에는 두 세대가 비슷해질 정도로 20ㆍ30대 비중이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20ㆍ30대가 선도하기는커녕 주택이나 주식 시장처럼 40ㆍ50대가 가격을 올려놓은 후 20ㆍ30대는 한발 늦게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가상화폐 관련 일일 검색량 최대를 기록한 날은 1기 가상화폐 버블이 가라앉은 후인 2019년 4월 2일인 점이 눈에 띈다. 그 이유는 전날인 1일 미국 금융 전문 매체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승인했다”는 보도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결국 만우절 기사였음이 밝혀졌지만, 이를 계기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으며, 상승 이전으로 돌아오는 데 5개월이나 걸렸다. 불과 2년 전 만우절 농담 소재였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 승인’을 놓고 SEC는 진지하게 검토하다 결국 결정을 6월로 연기했다. 가상화폐의 위상이 얼마나 빠르게 높아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다.

달라진 가상화폐의 위상은 국내에서도 확인된다. 2기에 게재된 관련 기사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분석했더니, 주식(4위) 화폐(7위) 부동산(11위)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 투자하다(13위)와 투자(15위)가 투기(16위)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이는 대중은 이미 가상화폐를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진지한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시에 당국의 잇단 경고에 대한 불안감도 커, 망하다(33위) 떨어지다(34위) 도박(42위) 등이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사기’가 36위를 차지한 것은 당국의 가상화폐 관련 제도 미비로 피해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가상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블록체인’은 57위에 그쳐, 대중의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분석을 진행한 배영 ISDS 소장(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은 “주요 키워드로 정부, 세금, 모르다, 망하다, 떨어지다 등이 등장한다는 것은 가상화폐 가치의 급등락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의 시각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1기’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현재 ‘2기’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가상화폐 관련된 기사를 분석했다. 1기에는 부작용(11위) 불법행위(12위) 거래 전면 금지(16위) 전면 폐쇄(23위) 등 가상화폐 자체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이에 비해 ‘2기’에는 내재가치(판단 유보) 7위, 투기성(15위) 청년들(16위) 등 투자 피해에 대한 경고가 주를 이루는 반면, 불법성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사라진다. 투자의 위험성은 강조하면서도 가상화폐의 존재 자체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어정쩡한 자세이다. 배 소장은 “3년이 흘렀지만, 가상화폐 정책 방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어정쩡한 자세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지난 7일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가상화폐를 제도권 내에 끌어들여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상자산업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뒤늦은 조치인 만큼 치밀한 검토와 충분한 토의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 발전과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의 두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국일보-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 공동기획

정영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