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별세한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의 작품 세계가 서울 성북구에서 다시 살아난다. 고인의 뜻에 따라 그가 남긴 작품과 컬렉션 3,290점이 성북구에 모두 기증되면서다. 성북구는 그의 이름을 내건 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세옥의 유족과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12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고 서세옥 작품 및 컬렉션 기증을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수묵의 점과 선으로 인물 형상을 표현한 대표작 '춤추는 사람들(1989)'을 비롯한 구상화 및 추상화 450점과 드로잉, 전각 등 2,298점이 포함됐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소정 변관식 등 그가 소장했던 컬렉션 992점까지 서세옥 작품 세계의 뿌리까지 파악할 수 있는 방대한 규모다. 앞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고향인 대구미술관에 기부한 190점을 제외하고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이 성북구에 기증됐다.
특히 이번 기증은 지역의 예술적 자원이 공공에 환원돼 더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뜻깊다. 성북구는 서세옥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고 연구하는 유일한 메카가 될 별도의 지역 기반 작가 미술관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오는 11월 추모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다.
성북동에서 60년 넘게 산 서세옥은 생전에도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그를 중심으로 모인 성북 거주 미술인들은 1978년 성북장학회를 결성, 작품을 판 기금으로 지난해까지 1,700여 명의 관내 저소득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9년 전국 최초로 자치구가 세운 성북구립미술관 건립에도 힘을 보태면서 명예관장을 지냈다.
고인의 아내인 정민자 여사는 "생전에 20대 때부터 모든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려고 생각해왔다"며 "그의 작품을 전시하게 될 미술관이 대한민국 명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