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가 본격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주식, 주택뿐 아니라 원자재와 식량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에브리싱)'의 가격이 동시다발로 치솟고 있다. 대개 특정 분야에 거품이 집중되던 과거의 경기회복기와 달리, 전례없는 유동성이 거의 모든 자산의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줄곧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세계 경제가 서서히 인플레이션의 공포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10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의 3개월 만기 구리 선물 가격은 장중 1만747.50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넘겼다. 같은 날 싱가포르 상품거래소에서는 철광석 가격이 10% 급등해 226달러를 넘기면서 역시 신고가를 경신했고, 알루미늄과 주석 등도 가격 상승폭을 넓히고 있다. 사실상 원자재 '슈퍼 사이클(장기적 상승 추세)'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정신없이 오르는 건 광물 가격뿐이 아니다. 미국 주택 건설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목재도 '귀한 손님'이 됐다. 이날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목재 선물은 1,000보드피트당 1,601달러에 마감됐다. 연초의 거의 2배, 1년 전의 6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곡물 가격도 이미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옥수수 값은 올해 들어서만 50% 넘게 오르면서 2012년 이후 가장 높다. 설탕 가격은 1년 만에 73%나 뛰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개월 연속 상승했다. 우리나라도 외식물가지수가 4월 들어 1.9%나 상승하면서 2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내 집값과 주가는 1년째 달리는 중이다. 지난해 1월 8억 중반대였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달 11억 원을 넘어섰다. 코스피는 10년 가까운 박스권을 벗어나 3,300선을 바라보고 있다. 혜성처럼 등장한 비트코인 가격도 올해 들어서만 120% 넘게 폭등했다. 안전·위험자산 할 것 없이 모든 자산이 유동성을 연료 삼아 수직이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원자재와 곡물 가격 상승이 생산 원가를 높이면,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를 자극한다. 특히 이번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모든 금융 및 자산시장이 호조를 보이는 현상)'는 세계적으로 막대한 유동성이 동력인 만큼, "일시적인 상승에 그칠 것"이란 주요국 중앙은행의 호언에도 불구하고 향후 추세적인 인플레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실제 11일 발표된 중국의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6.8%)은 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세계적인 인플레 위험을 더 부추겼다. 한국의 4월 소비자물가도 2.3% 올라 44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했다.
추세적인 물가 상승과 자산가격 거품은 당장 소비자의 구매력 감소 수준을 넘어 장기적으로 금리 인상을 촉발시킨다. "2023년까지 금리인상은 없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는 최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의 금리인상 가능성 언급으로 연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1,600조 원을 넘는 한국의 가계부채에 금리인상은 '폭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장재철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서는 올해 9월쯤부터 연준이 테이퍼링을 언급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데, 그러면 시장금리가 먼저 움직이면서 가계부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 정부가 4%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있고, 내년에도 잠재성장률을 넘는 성장이 지속된다고 본다면 한국은행이 긴축을 위해 예상보다 빨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경기 회복을 위해 어떻게든 저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각국 중앙은행이 거품 우려에 금리 인상 등으로 적극 대응하기 쉽지 않아서다. 안소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앙은행이 기다리는 실물수요에 의한 물가상승이 가시화되기 전에는 급격히 돈줄을 죌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