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T자형 인재이신가요

입력
2021.05.11 20:00
25면

편집자주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살펴보고, 플랫폼 기반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본다.




지구 곳곳의 작은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비교해가며 입맛에 맞는 와인을 직접 구매해서 즐길 수 있는 공간. 이름 없는 무명의 디자이너도 자신이 디자인한 티셔츠를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는 공간. 플랫폼은 사용자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공급자에게 보다 다양한 판매 경로를 제공하면서 사용자와 공급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 때문에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정보통신기술과 물류 기제의 발달로 물리적 제약이 극복되면서 최선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는 ‘무한 경쟁’과 ‘시장의 양극화’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보다 다양한 상품을 비교해가며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사용자들이 몰려들고, 보다 많은 판매 기회를 얻기 위해 사용자들이 몰리는 플랫폼으로 공급자들도 몰려든다. 그리고 공급자 간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사용자들은 구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와 같은 긍정적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을 하나로 묶어내는 거대한 플랫폼이 출현하면서 플랫폼 간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은 ‘쇼핑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마존하다’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시장의 지배력을 높여가며 소규모 플랫폼과 지역 상권을 붕괴시키고 있다.

플랫폼 간의 쏠림 현상만큼이나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상품 간의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특히 상품에 대한 사용자의 요구가 다양하지 않고 표준화되어 있어 객관적인 평가가 용이한 상품군에서 쏠림 현상은 두드러진다. 미래에는 상품 시장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도 유사한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원격으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고 재생산에 추가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지식서비스 산업의 경우, 결국 1등만 살아남은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가상현실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동시통번역기의 출현으로 언어의 장벽마저 사라지면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영역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통합된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시장은 사용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은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갈 것이다. 세분화·전문화된 노동력은 플랫폼상에서 사용자의 관점에 따라 그때그때 조합되면서 사용자가 원하는 통합된 서비스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모순적이지만 영역의 구분이 허물어지는 융복합 시대에 더욱 요구되는 역량은 세분화된 영역의 전문성이다. 근로자들은 되도록 자신의 분야를 좁게 설정하고, 그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영역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기계와도 경쟁해야 하는 무한 경쟁 시대가 다가오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경쟁을 피해 남들이 가지 않는 영역을 선택해야 한다. 수요와 종사자가 적은 영역은 기계로 대체되는 시기도 늦춰질 것이다. 기계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다양한 분야에 접목시켜 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노력은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 한 분야에서 좁고 깊은 지식을 쌓고,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넓고 얕은 지식을 쌓아 누구와도 소통과 협업이 가능한 T자형 인재가 플랫폼 시대에 주목받는 이유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