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 오지, 아체서도 알아주는 한국의 '그 이름'

입력
2021.05.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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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코이카 해외사무소 1호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아시키병원. 인도네시아 국토 동쪽 끝 뉴기니섬의 파푸아주(州)에서도 가장 동쪽 끝에 있는 병원이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파푸아 남쪽 도시 머라우케까지 비행기로 9시간, 다시 끝없는 밀림을 뚫고 북쪽을 향해 차로 6시간을 달려야 닿는다. 1년여 전 기자가 찾아갔을 때 고열에 시달리는 생후 8개월 에카를 데려온 베르나데타씨는 "병원이 가까워서 좋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은 차로 3시간 이상 걸린다.

파푸아는 영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54명으로 인도네시아 1위다. 아시키가 속한 보벤디굴 지역 유아 사망은 2017년 9월 아시키병원 개원 뒤 현저히 줄었다. 아시키병원은 2019년 1차 의료기관 평가에서 전국 2위를 차지했다. 주민 5,000여 명에겐 더없이 귀한 존재다. 피르만 아시키병원장은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실, 치과, 산부인과, 내과, 응급실, 입원실 18병상 등을 갖추고 산모교실을 비롯한 주민 의료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거론했다.

두 달 뒤 인도네시아 서북쪽 끝 아체특별자치주 반다아체에서 '그 이름'을 다시 들었다. 2004년 12월 26일 1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체 쓰나미(또는 인도양 쓰나미) 15주기를 맞아 현장을 두루 취재했을 때다. 안내를 맡은 하이칼씨는 "쓰나미 당시 아체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오고 몇 년간 지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의 '그 이름'을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아시키와 반다아체는 직선거리로 5,200여 ㎞ 떨어져 있다. 자카르타~인천 항공로 거리(5,244㎞)와 맞먹는다. 아시키가 세상과 단절된 오지 중 오지라면, 아체는 샤리아(이슬람 관습법)가 실질 지배하는 독특한 땅이다. 서로 오가기도, 교류하기도 힘든 양쪽 주민들에게 공통되게 각인된 '그 이름'은 코이카(KOICAㆍ한국국제협력단)다. 아시키에선 파푸아에 처음 진출한 한인 기업 코린도그룹과 협력해 병원을 지었고, 아체에선 시범학교 및 친선병원 건립, 맹그로브 숲(550ha) 복원 등 쓰나미 이후 재건에 힘썼다.

올해 창립 30주년인 코이카는 1991년 4월 출범했다. 그 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이듬해 해외사무소 1호를 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받던 수혜국에서 주는 나라로 거듭난' 한국이 공여 역사의 첫 장을 인도네시아로 장식한 셈이다. 가난하지만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하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 발전 및 협력 가능성이 높은 점이 낙점 배경이다. 식민 지배 등 역사적 유사성, 정치적 안정도 이유로 꼽혔다.

첫 사업은 칼리만탄(보르네오)섬 직업훈련이었다. 9년간 연수생 404명을 초청하고 전문가 522명을 파견했다. 이후 연수생 초청, 정보통신기술(ICT)교육센터, 청년 혁신가 및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 등으로 보폭을 넓힌 교육 사업은 인도네시아 차관 6명을 배출할 정도로 인재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질도 작성, 도로망 개발 조사, 강 복원, 생태관광 지원, 실시간 홍수예보 시스템 등 코이카가 인도네시아에 족적을 남긴 사업은 민관 협력 포함해 150개가 넘는다.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땀 흘린 코이카 봉사단은 4,290명에 달한다.

서부자바주 보고르의 룸핀양묘센터도 코이카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여러 장관들을 대동하고 방문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이곳에서 1,600만 묘목을 생산해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하는 지역에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룸핀은 녹색경제의 미래이자 토바호수(북부수마트라주), 만달리카(서누사텡가라주), 라부안바조(동누사텡가라주) 등 다른 여러 지역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 정책에도 코이카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기술 습득과 개발에 치중됐던 사업 방향은 차츰 사람과 환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7월엔 개발도상국이 자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1회 '킹세종&장영실' 경진대회를 인도네시아에서 열었다. 주제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코모도국립공원 내 파파가랑섬에 태양광발전 얼음공장을 지어 얼음과 물 포장에 쓰고 버렸던 비밀과 일회용 용기 등 플라스틱 폐기물을 월 6.5톤이나 줄인 코모도워터가 1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동티모르를 잇는 삼각 협력 그린뉴딜도 착수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정회진 소장), "양국이 더불어 할 수 있는 환경 등 공통 관심사에"(김민희 부소장), "정부 주도보다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는"(조정신 부소장), "사람을 키우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사업"(김송주 부소장)이 코이카 인도네시아사무소 직원들의 바람이다. 30년간 이 땅 곳곳에 뿌린 코이카의 씨앗들은 장성한 나무로 자라 저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아시키·반다아체=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