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검찰 황태자’로 불리던 이성윤(59) 서울중앙지검장이 10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피고인'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이 지검장은 이날 열린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에 직접 출석해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항변했지만, 압도적 차이로 공소제기 권고가 의결돼 오히려 그의 혐의가 짙다는 인상만 남겼다.
검찰 내 비주류로 분류됐던 이 지검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승승장구했다. 정권 교체 직후인 2017년 7월 단행된 인사에서 '예상을 깨고' 검사장으로 승진한 이 지검장은 검찰 핵심 보직인 대검 형사부장과 반부패강력부장을 거쳐 2019년 7월 검찰 내 ‘빅3’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밀어붙이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월 그를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앉혔다.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윤석열 전 총장이 조국 전 장관 수사로 정권과 척을 지면서, 자연스럽게 현 정부 ‘검찰 황태자’는 이성윤 지검장이란 말이 나왔다.
이 지검장이 승승장구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을 맡아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라는 점도 좋은 인연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하면서 ‘시대 정신’을 강조하며 '친정부' 성향을 드러냈다. 특히 ‘검언유착’ 의혹 사건, 울산시장 선거의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등 정권이 부담스러워하는 사건 수사 및 처리에서 윤석열 전 총장과 끊임 없이 대립각을 세웠다. 여권 및 청와대 입맛에 맞게 사건을 몰고 간다는 평가가 높아지면서, 후배 검사들의 신망을 잃어 갔다. 지난해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에선 직속 참모인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이 이 지검장 사퇴를 건의하기도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취임 후에도 그의 상승곡선은 계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박 장관 취임 후 단행된 첫 검사장급 인사에서 당시 신현수 민정수석의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지검장은 계속 자리를 지켰다. 올해 3월 윤 전 총장이 사임한 후 차기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 이 지검장이 거론됐던 것도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 지검장 입지가 흔들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수원지검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수사였다. 당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및 법무부의 위법적인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이 수사는 2019년 수원지검 안양지청 수사팀이 대검에서 수사외압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확산됐다. 수원지검 수사 초기 검찰 소환을 네 차례나 거부하던 이 지검장은 고발장이 접수돼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자 해당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배수진을 쳤다. 한 지방검찰청 고위 간부는 “수사는 증거와 진술에 따라 결대로 가야 하고, 그에 어긋나면 탈이 난다”면서 “정권 입맛에 맞게 사건을 처리했던 정치검사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