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1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강행' 의지라는 벽에 부딪혔다. 당 지도부가 "3명 모두 안고 가기엔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전달했음에도 문 대통령이 오는 14일까지 후보자 3명의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면서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후 새 지도부를 꾸려 '변화와 쇄신'을 도모하려던 민주당에선 이번 계기로 민심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11일 한국일보에 "지도부가 '3명 모두 (임명을) 강행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안다"며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시기에 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길 대표 등 지도부는 전날 의원총회에서 수렴한 의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당 지도부에서도 "여야 합의 없는 장관 임명은 피해야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등의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이제까지 29명의 장관급 인사를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해 '인사 독주'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이날 오후 3명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면서 당 지도부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3명 중 일부는 재송부 요청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기대마저 사라지면서 문 대통령이 3명 모두에 대한 임명 강행 수순을 밟은 것으로 해석했다.
당청관계의 변화를 약속한 송영길 대표와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려던 당 입장에선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3명의 임명을 강행할 경우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준·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 임명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운영위원장 선출 △5월 국회 일정 협의 등에서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당에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전날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후보자 3명의 거취 논란과 관련해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더 깊은 독선과 오만의 늪을 찾아가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이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두 차례 회동을 가졌으나 김부겸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 발언으로 여야 협상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우선 문 대통령이 설정한 장관 후보자 3명의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마감시한인 14일까지 야당과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협상에서 국민의힘으로부터 김 후보자 인준에 대한 협조를 이끌어낸다면 청와대에 일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설득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문 대통령이 주고 받기식 '여의도 정치'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정치권에선 일부 후보자의 낙마는 불가피하는 견해가 확산하고 있다. 5선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소한 임혜숙·박준영 두 분은 민심에 크게 못 미치고 따라서 장관 임명을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송 대표와 재선의원들의 간담회에서도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는 발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정의당도 임혜숙·박준영 후보자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임혜숙·박준영 후보자의 경우 임명을 강행한다면 국민이 바라는 협치를 흔드는 행위라고 경고한다. 이 정권과 여당의 오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