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칫솔에 락스 칙!… "안 죽노… 오늘 진짜 죽었으면"

입력
2021.05.10 15:20
배가 살살… 알고 봤더니 아내가 칫솔에 락스
아내 집에 녹음장치·카톡 열람했다 피소된 남편
법원서 벌금 100만원 선고유예·무죄판결 받아

법원이 외도 등을 의심해 아내 휴대폰 카카오톡을 몰래 훔쳐본 혐의 등으로 기소된 40대 남편에게 벌금 100만 원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타인의 비밀’을 침해했지만, 그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외출한 사이 집에 남은 아내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도 무죄로 판단했다.

대구지방법원 형사12부(이규철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아내 카카오톡 내용을 몰래 훔쳐본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관한 법률 위반)와 집 안에서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A(47)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카카오톡 훔쳐보기는 선고유예, 몰래 녹음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아내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비밀번호로 잠긴 휴대폰을 몰래 훔쳐봤는데도 무죄가 선고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A씨는 2019년 11월부터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건강검진 결과 위염과 식도염 진단을 받았다. 그는 위가 아플 즈음부터 자신이 사용하는 안방 화장실에 둔 칫솔에서 락스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평소 보지 못한 곰팡이 제거용 락스가 2통이나 있는 것도 확인했다. 20여 년 전 결혼한 A씨는 아내와 사이가 나빠져 10여 년 전부턴 각방에 화장실도 따로 쓰고 있었다.

아내가 의심스러웠던 A씨는 집에 녹음장치를 설치했다. 아내는 안방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뿌리면서 “안 죽노(죽느냐의 경상도 사투리), 안 죽나” “락스물에 진짜 처담그고 싶다. 진짜 마음 같아선” “오늘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진짜, 어? 몇 달을 지켜봐야되지? 안 뒤지나(죽나) 진짜…” “뭐 이렇게 해도 안 죽는데, 진짜 가지가지다” 등의 혼잣말을 했다.

A씨는 이를 근거로 지난해 4월 법원에 피해자 보호명령청구를 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A씨 부인을 주거지에서 즉시 퇴거하고 직장 등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임시 보호 명령을 내렸다. 비슷한 시기 아내를 검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아내를 특수상해미수 혐의로 기소했고, 이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A씨는 그러나 아내로부터 역공을 받았다. A씨는 2014년 가을 아내 불륜을 의심해 우연히 알게 된 아내의 휴대폰 잠금장치를 풀고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열람했다. 아내는 A씨 고소의 근거가 된 몰래 녹음과 카카오톡 무단 열람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무단 녹음에 대해선 “(A씨가) 자신의 신체와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정당행위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카카오톡 무단 열람 행위도 “우발적으로 이뤄진데다 참작할 바가 있고 범행 이후 5년이 넘도록 아내가 문제 삼지 않고 부부관계를 계속 유지했다”며 선고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대구=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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