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미얀마 사태 중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아세안 의장국이 현지 방문을 타진 중이나 군부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외지인의 유입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가 결국 군부에 시간만 벌어준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9일 이라와디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아세안 지도부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이 끝나는 15일 이후 미얀마를 찾는 방안을 군부와 논의하고 있다. 방문단 대표는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의 이레완 유소프 외무장관이며, 림 족 호이 사무총장이 실무를 보좌한다. 입국이 허용되면 쿠데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의 만남은 물론, 학살 현장도 둘러볼 수 있다.
아세안은 지난달 24일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폭력 즉각 중단’ 등 5개 합의사항이 3주째 지켜지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되자 추가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대표단 방문과 별개로 현지 민주세력과 군부 협상을 중재할 특사단 구성에도 착수했다. 하산 위라유다 전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 위사락 푸트라쿨 전 태국 외교차관도 등이 특사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세안의 노력은 미얀마 군부의 무시 전략 탓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전망이다. 군정 최고 의결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AC)의 카웅 텟 산 대변인은 앞서 7일 “아세안이 대표 파견을 원하고 있지만, 미얀마의 치안과 안정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세안 합의문 도출 이틀 뒤인 같은 달 26일 내놓은 발표 문구와 토씨 하나까지 똑 같았다. ‘정국 안정’ 기준은 군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현지 실사단 수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때문에 마지막 희망은 외부가 아닌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선전 여부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부는 최근 카친ㆍ카렌주(州) 등 소수민족 반군과의 교전 현장에 최정예 부대인 77경보병사단과 박격포 부대까지 파견했다. 그만큼 전황을 뒤집지 못하고 반군에 끌려 다닌다는 뜻이다.
여기에 국민통합정부(NUG)가 창설을 공식화한 시민방위군도 친ㆍ사가잉주 등 국경지대에서 속속 대열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군부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현지 군 소식통은 “확률은 낮지만 교전에서 계속 밀리면 군부가 아세안 중재를 빌미로 반군과 방위군 활동 중단을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