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데 이유 없이 허리가 아프다고요… 디스크 아닌 ‘강직성 척추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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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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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디스크, 척추관협착증 등 관절 관련 질환은 주로 노인에게 많이 나타난다. 반면 '강직성 척추염(ankylosing spondylitis)'은 젊은 층에서 많이 발병한다. 20대 초반 대학생이나 군인 등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강직성 척추염은 말 그대로 척추에 염증이 생겨 뻣뻣해지는 병이다. 별다른 이유 없이 척추에 염증이 생겨 통증을 일으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강직성 척추염 환자는 지난해 4만8,294명으로 2010년 3만1,802명에 비해 10년 새 52% 증가했는데,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2.5배(3만4,908명) 많았다. 남성 환자 가운데 40대가 27.4%로 가장 많았고, 30대(23.4%), 50대(17.9%), 20대(17.4%) 순이었다.

◇20대에도 별 이유 없이 허리가 아프다면

이처럼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훨씬 많다. 증상도 남성이 여성보다 심하고, 발병 시기가 2~3년 정도 더 빠르다. 김태환 한양대류마티스병원장(한양대 의대 류마티스내과 교수)은 “강직성 척추염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10~20대는 성호르몬이 왕성한 시기이므로 성호르몬과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천골(薦骨ㆍ엉치뼈)과 장골(腸骨ㆍ엉덩이뼈) 사이에 위치한 ‘천장관절(薦腸關節)’ 부위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염증이 생겨 통증을 일으킨다. 허리 아래쪽이나 엉덩이 부위에서 통증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날 때 뻣뻣한 증상(조조 강직)이 나타난다. 움직이면 증상이 호전되고 가만히 있으면 다시 뻣뻣해지는 게 특징이다. 증상이 생기고 수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엉덩이 양쪽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밤에 더 악화해 잠을 깨기 일쑤다. 척추 변형과 강직을 일으킬 수 있다.

천장관절에서 시작된 염증은 허리(척추)·목·어깨까지 번지기도 한다. 안구에 염증이 생기면 포도막염을 유발하고, 피부에 생기면 건선을 일으킨다. 장의 염증으로 설사, 혈변, 소화불량 등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척추 외 기관에 염증이 나타나는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강직성 척추염은 조기 진단이 쉽지 않다. 대한류마티스학회 조사 결과(전국 26개 대학병원 10~70대 강직성 척추염 환자 1,012명), 강직성 척추염 환자가 정확히 진단받지 못하고 3년 정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직성 척추염은 주로 허리나 엉덩이에 통증이 발생하므로 허리디스크나 엉덩이관절염 등으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상훈 강동경희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허리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등으로 오인할 때가 많다”고 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꼬리뼈와 엉덩이뼈가 만나는 천장관절에 염증이 생겨 아프고, 점점 척추 위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통증도 위로 올라가는 특징을 보인다. 염증이 심해지면 디스크가 사라지면서 척추 자체가 아예 굳어버린다. 반면 허리 디스크는 신경이 눌려 다리가 저리는 증상이 동반된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척추 변형과 강직 현상이 나타나면 몸을 앞이나 옆으로 구부리거나 뒤쪽으로 젖히는 동작이 어려워진다. 강직성 척추염을 관절 없이 하나의 긴 뼈처럼 이어진 모습을 빗대 ‘대나무 척추(bamboo spine)’라고 부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

강직성 척추염의 발병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김재민 인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HLA-B27(Human Leukocyte Antigen-B27)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가 면역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HLA-B27 유전자가 양성이라고 해서 모두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양성인 성인 1~2%에서만 발병한다”고 했다.

유전적 요인 외에도 환경적 요인, 면역반응 증가 등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강직성 척추염을 예방하기는 어렵지만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하면 척추 변형과 강직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허리 통증은 매우 빈번히 나타나기에 허리가 아파도 단순 근육통이나 디스크, 생리통 등으로 오인해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기 일쑤다.

김재민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이 디스크나 근육통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움직일수록 통증과 뻣뻣함이 좋아지는 것”이라며 “만약 별다른 움직임이나 무리한 신체적 활동이 없었는데도 허리와 골반 주변이 자주 뻣뻣해지고 아프다면 강직성 척추염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약물 치료는 비스테로이드 소염제가 1차적으로 쓰이고, 여기에 반응이 없고 증상이 지속될 때는 종양 괴사 인자(TNF)-알파 억제제라는 생물학적 제제(아달리무맙, 에타너셉트, 인플립시맙 등)로 치료한다. TNF-알파 억제제는 병 원인이 되는 TNF-알파 작용을 차단해 염증을 치료하므로 통증이 빠르게 호전되고 일상생활 복귀도 빨라진다.

강직성 척추염의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약물 치료와 함께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대한류마티스학회는 스트레칭 등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하고 자전거 타기, 배드민턴 등의 생활운동을 하루 20~30분 정도 권장한다. 이러한 운동 패턴을 꾸준히 유지하면 자세 유지와 관절 통증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김태환 교수는 “전체 환자의 40~50%는 약을 먹으면 충분히 좋아지고, 30%는 심해지고, 나머지 20~30%는 병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증상이 나타난다”며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약보다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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