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해를 기억하자"... 역사 책임 되새기는 日 시민들

입력
2021.05.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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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부터 일본의 전쟁 범죄를 알리는 ‘전쟁의 가해 패널전’이 열리고 있는 일본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민센터. 7일 방문한 이 전시회의 한 코너엔 심하게 녹이 슨 방독마스크의 일부와 그릇, 수류탄 등이 전시돼 있었다. 가나가와현 사무카와마치 소재 옛 사가미해군공창 철거지역에서 출토된 물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독가스탄 등 화학무기를 제조한 장소다. 일본에서 제조한 화학무기는 중국 각지에서 실제로 사용됐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 전시회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사진과 도표, 설명자료 등을 통해 자세히 알린다. 2015년 일본 현대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10명 정도의 시민이 모여 결성한 ‘기억의 계승을 추진하는 가나가와의 모임’이 2016년부터 매년 개최해 왔다. 매년 1,000~2,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2019년에는 2,600명이나 방문했으나, 지난해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관람객이 수백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다케오카 겐지(75)씨는 전시회를 처음 개최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로서의 일본’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모르고 있는 일본인이 많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많은 일본인들이 도쿄 공습과 히로시마 원폭의 참상을 통해 전쟁을 기억하고,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독일과 달리 일본이 어떤 전쟁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통해 널리 알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이 직접 이를 알리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는 ‘1931 중국 동북부(만주) 침략으로부터 90년’ 특집을 마련해, 만주 침략, 독가스 병기, 731부대, 만주에 강제로 이주 당한 조선인 등의 세부 주제로 나눠 전시했다. 이밖에도 조선인ㆍ중국인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 남경대학살, 전후 보상에서 독일과 일본의 차이 등을 다뤘다. 자료의 만듦새가 뛰어나진 않지만 내용은 매우 알차다.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해 대략적으로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 간다”는 소감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올해도 감동적인 소감을 남긴 관람객이 많았다. “학교에서 안 배운 게 많았다. 한국 중국 동남아 국가들이 아직도 화를 내고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수정주의가 발호하는 일본 사회이지만, 아픈 역사를 억압당한 쪽의 시각에 공감하면서 응시하는 것이 가해자의 책임임을 다시 한번 통감했다.” “사실에 압도당했다. 과거를 제대로 보고 미래를 생각해 가고 싶다” “이러한 전시회를 국립박물관 등에서 열지 않아 유감이다. 전쟁 가해에 대해서는 의무교육 기간에 확실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의견이다.


요코하마=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