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통 격차가 경제적·사회적 소외를 가속화시킨다

입력
2021.05.09 21:38

베트남 뚜엔꽝에 사는 황칸화(27세)는 휴가를 얻어 친구 응우엔 티짱과 함께 10일간 미국 뉴욕을 여행할 계획이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하노이 국제공항(Noi Bai International Airport). 유감스럽게도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비행시간이 17~20시간이나 소요되는 하노이-뉴욕 14,000 킬로미터 구간을 운항하는 여객기가 아직 취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화는 비행기로 2~5시간 거리에 있는 홍콩, 대만, 한국, 일본 등지의 국제공항에서 환승한 후 뉴욕으로 가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항공사는 대만의 에바항공(Eva Air)과 중국항공(China Airlines)이다. 환승 시 이용하는 공항은 타이베이 국제국항(Taoyuan International Airport)과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Hong Kong International Airport)이다. 비행기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환승 시간이 짧으며, 같은 동남아권이라 문화와 음식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칸화는 여느 베트남 젊은이들처럼 한국의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이나 일본의 나리타국제공항(Narita International Airport)같은 공항을 원한다. 한국은 최근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의 모국이자, 베트남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한류의 중심 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관광뿐만 아니라 음식, 문화에 대한 자극을 고취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칸화는 미국으로 가는 길에 인천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한류를 만끽하고 싶다. 돌아올 때는 나리타공항에서 내려 일본을 잠시나마 느끼려 한다.

동남아인들이 한국 일본을 꼭 거쳐야 하는 절박한 이유

동남아 국가 사람들은 미국으로 여행할 때 한 차례 환승을 한다. 14,000~17,000 킬로미터나 되는 장거리를 한 번에 주파하는 여객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비행 거리가 가장 긴 비행기는 싱가포르-뉴욕 간 16,737 킬로미터를 운항하는 A35-900 ULR이다. 이 비행기는 프리미엄 이코노미 94석과 비즈니스 67석 등 고급 좌석 161석으로만 구성된 비행기로, 18시간 45분 동안 비행한다. 웬만한 사람들은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여객기다. 현재 상업적으로 성공한 장거리 여객기는 A380이다. 항속거리가 15,200 킬로미터여서, 마음만 먹으면 하노이-뉴욕 구간을 직항할 수 있다.

그렇지만 A380이 취항할 수 있는 공항은 많지 않다. 500개의 좌석, 2층으로 구성된 이 초대형 여객기는 기체 무게가 280톤이나 되고 이륙 중량은 500톤이 넘는, 문자 그대로 거대 중력의 비행 물체다. 이렇게 육중한 비행기가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3.7~4km의 초장거리 활주로가 확보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허브 공항을 지향하는 국제공항만이 이 정도의 활주로를 구축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한국 인천공항, 일본 나리타공항 등 손에 꼽힐 정도다. 이들 공항은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탑승하고 환승하는 바람에 여객터미널이 늘 붐빈다. 말 그대로 동아시아 최대의 허브 공항들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시야에 넣고 지배하려는 담대한 계획을 구상하는 국가만이 A380의 취항이 가능하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도는 광대 노선을 구축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허브 공항을 꿈꾸는 것이 버거운 하노이공항은 좌석수 250~350개, 항속거리 11,000~13000 킬로미터를 운항하는 B777급 대형 여객기의 취항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B777이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3.2~3.7km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베트남을 대표하는 '베트남항공'의 주력기는 좌석 수 120~180개, 항속거리 3000~5000 킬로미터의 소형 여객기인 B737이다. B737은 2.5~2.7km 정도의 중소형 활주로만으로 이착륙이 가능하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비행시간 5시간 이내의 한국이나 일본을 여행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17~20시간이나 소요되는 미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대형 여객기의 취항이 가능한 동아시아 허브 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칸화가 환승지로 대만과 홍콩을 선택할지, 한국과 일본을 택할지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트남 사람 처지와 같은 대구·경북 주민들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환승없는 미국 혹은 유럽 여행을 가로막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거리 여행객이 많지 않아 상업적으로 이익이 크지 않은 까닭에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대형 여객기가 취항을 꺼리고, 대형 여객기가 뜰 수 있는 대규모 공항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한반도 동남권의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이 처한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김해공항의 활주로는 3.2km의 대형 활주로 한 개, 2.7km의 중형 활주로 한 개 등 두 개로 구성되어 있고, 중·소형기 37대가 주기(駐機)할 수 있는 '중규모 공항'임을 지적한 바 있다. 2.7km급 중형 활주로 두 개만 달랑 설치된 대구공항은 B737급 소형 여객기 10대 정도만이 주기할 수 있는 '지방공항'이다.

애초에 중·소형 여객기가 취항하는 지방공항으로 설계된 탓에,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은 미국과 유럽을 직항할 수 있는 대형 여객기의 이착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기 위해 홍콩, 대만, 한국, 일본에서 환승하는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대구와 부산 사람들은 4~6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이동의 불편을 무릅쓰면서까지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거나, 김해공항에서 나리타공항으로 운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대구 시민과 경북 도민들의 처지가 베트남 사람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두 시간 안에 인천공항에 도달할 수 있는 수도권 주민들은 대형 여객기를 이용하여 한번에 미국을 여행한다. 반면 4~6시간 거리에 위치한 비수도권 주민들은 인천공항으로 올라가거나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해야 한다. 수도권 주민들이 한국, 일본, 대만 국민처럼 동아시아의 1류 국민의 처지라면, 비수도권 주민들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국민처럼 2~3류 국민의 입장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살아가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서, 이러한 교통 격차는 경제적·사회적 차이를 유발하고, 비수도권 주민들의 수도권으로의 이탈과 지방 공동화 현상을 촉발시킨다.

지방 소멸 위기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 움직임의 대두

교통 격차에서 촉발된 경제적·사회적 소외와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가 커져가는 가운데, 지방분권에 대한 비수도권 주민들의 열망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지방이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2005년 동남권 5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발의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움직임도 그러한 열망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가덕도를 지지하는 부산과 밀양을 밀었던 대구·경북이 나뉘어 정치적으로 격렬하게 대립했고, 이에 중앙정부와 수도권 주민들은 동남권 주민들의 지역갈등과 지역 이기주의의 노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실패한 지자체, 정부, 기업, 언론, 교육기관 등 여론 선도기관과 인사들의 책임이 크다.

올해 2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부산·경남권의 독자적 신공항 건설 작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동남권의 교통 격차 해소 문제가 한층 더 꼬여 버렸다. 이 문제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릴 경우, 부산·경남권과 대구·경북권 주민들의 정치적·경제적 대립은 한층 더 격해질 것이고, 동남권 지역 주민들의 수도권으로의 이탈과 지역 공동화 현상은 더욱 가속을 받을 것이다. 가덕도신공항이 이미 정부가 내놓은 하나의 대안이라면, 대구·경북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구·경북권이 추진하고 있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국제공항으로 만들 수 있는가의 여부에 그 답이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성우 대구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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