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성폭행 및 불법촬영 혐의로 징역 5년형을 확정받은 가수 정준영씨의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힌 지 5년 만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제도적으로 막아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호소했다.
피해자 A씨는 6일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변화를 촉구합니다. 더 이상의 2차 가해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앞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청원의 작성자임을 밝혔다.
그는 정씨로부터 불법 촬영 피해를 당해 2016년 2월 정씨를 고소했다가 일주일 만에 취하했다. 그는 "당시 성범죄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역고소에 대한 두려움, 연예인과 장기 소송전에 대한 부담감도 고소 취하의 원인이 됐다.
그는 "과거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용기가 부족했으나, 이제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바로잡고 2차 가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며 청원을 올리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돕는데 중요한 것은 사회·제도적 변화"라며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적었다.
먼저 ①자신을 모욕한 언론에 징계를 요구한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성범죄 사건 본질과 무관한 사후 피해자의 행동을 언급하거나, 어떠한 취재나 진위 확인 없이 터무니없는 억측을 보도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피해자는 되레 '정준영의 변심으로 우발적으로 고소한 자', '합의하에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으로 소비됐다며, 그는 "(이런 내용의 보도들은) 어떠한 공익적 가치도 없으며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배려 없는 보도임과 동시에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는 이어 ② 포털 성범죄 뉴스 댓글 비활성화를 요구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악플에 시달렸고, 머릿속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환청까지 들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수사 진행 중 사건이 보도되면 피해자가 댓글을 보고 사건 진행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탓하고 가해자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등 비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정상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성범죄 뉴스는 댓글창을 비활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해자는 또 ③성범죄 2차 가해처벌법과 ④민사소송 시 피해자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통해 2차 가해를 막을 제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비난·의심, 그리고 불법 촬영 동영상을 찾아보는 행위 모두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2차 가해 행위"라고 했다.
그는 "피해자 리스트, 동영상이 3년 뒤에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불법 촬영 영상을 찾는 누리꾼들의 가해 행위가 충격적"이었다며 "더는 이 사회에 살아 있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딸에 대한 2차 가해를 견디다 못 해 해외로 떠난 자신의 아버지가 뉴욕의 식당에서마저 딸을 '꽃뱀'이라 지칭하는 비난을 듣는 고통까지 겪었다고 했다.
그는 "성범죄 2차 가해는 불법촬영 범죄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라며 "처벌법을 마련해 2차 가해에 취약한 피해자들을 보호할 법적 울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등 민사소송 과정에서 "소송의 상대방인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주소, 개인정보 등이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했다.
그 결과 대다수 성범죄 피해자들이 '보복이 두려워' 피해를 겪고도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한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 피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에서는 형사소송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보호돼야 한다"며 입법을 촉구했다.
2019년 윤상직 당시 한국당 의원이 이러한 내용의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피해자는 "누구나 원치 않게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청원에 동의해서 성범죄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