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감수성

입력
2021.05.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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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31일 코로나19 관련 정례 브리핑에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시각장애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깜깜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깜깜이’ 대신 ‘감염 경로 불명,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 환자’ 등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그 바로 전 6월 4일 정은경 본부장은 보건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깜깜이 감염’이라고 했다. 깜깜이 감염이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요양병원 등으로 전파돼 고위험군의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이래저래 ‘깜깜이’는 환영받지 못할 대상이었다.

얼마 전 추미애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발단이 되어 ‘외눈’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언론의 편향성을 ‘외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전 뜻풀이에 차별적 의미가 없고, 장애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장애인 단체에서는 ‘외눈’이라는, 신체적 특징이 부각되는 단어에 ‘편향성’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담아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차별적 언어 표현에 대한 판단은 말하는 이의 표현 의도보다는 듣는 이의 해석과 수용성이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2019년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는 ‘장애 관련 올바른 용어 가이드라인’에서 ‘외눈박이’는 ‘왜곡된, 편파적인’으로, ‘깜깜이’는 ‘확인 불가능한, 알 수 없는’으로 대체 표현을 정한 바 있다. 코로나19 브리핑에서는 ‘깜깜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깜깜이 먹통, 깜깜이 수사’ 등 언론의 머리기사에서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다. 다수 대중을 향한 언론, 정치의 영역에서 특별히 더 세심한 언어적 감수성이 요구된다.

남미정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