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역류 데자뷔

입력
2021.05.05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마침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도 통화정책은 전적으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관할이다. 따라서 재무장관이 금리 조정을 거론하는 건 금기시돼 왔다. 하지만 직전 Fed 의장을 역임해서인지, 현지에서도 옐런의 언급 자체를 시비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4일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 주최 경제포럼에 보낸 사전 녹화 인터뷰에서 나왔다. 그는 “우리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옐런의 발언은 최근 미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존 경기부양책에 바이든 정부의 4조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계획까지 더해지면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2.6% 급등한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옐런의 발언은 Fed 쪽에서 나온 것이 아님에도, 당일 나스닥지수가 2% 가까이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 2018년 잠시 금리 인상 시도가 있긴 했지만, 미국 기준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난해 이래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10년 이상 장기 저금리 상태를 유지해온 셈이다. 하지만 점진적 추세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금리도 전환기엔 매우 급박한 속도로 반전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 당시인 1994년엔 연초 3%였던 기준금리를 일년 내내 연쇄 금리 인상을 이어가 단숨에 6%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 미국 금리변동의 파장은 막대하다. 1994년 미국 금리 급등은 신흥국가로 흘러 들었던 글로벌 자금을 단숨에 미국으로 대거 역류시키면서 멕시코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부른 원인(遠因)이 됐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조기 극복 가능성에 따라 선진국 경제가 활력을 회복하고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자 IMF 등은 이미 우리나라 가계부채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글로벌 금리가 급변동하면 국가부채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차근차근 대비 태세를 갖춰 나가기 시작해야 할 때다.

장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