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맞선 1년, 춤으로 태어난다

입력
2021.05.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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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과 권령은·김보라 안무가, 다음 달 4~6일 '그 후 1년' 공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공존한 시간이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겼다. 자연스레 공연계에서는 그 참혹하고 괴괴한 시간을 반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다음 달 4~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현대무용 '그 후 1년'이 대표적이다.

'그 후 1년'에는 현재 무용계에서 주목받는 안무가 권령은(39), 김보라(39)가 참여했다. 이들은 2014년 세계적인 창작안무대회 '요코하마 댄스컬렉션EX'에서 나란히 석권하는 등 일찍이 예술성을 인정받아 국내외 무대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들도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본의 아니게 지난 1년을 예술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최근 예술의전당 내 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만난 권, 김 안무가는 "내가 어디에 소속돼 있으며, 지금까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자문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안무가는 "공연 준비와 안무 작업 특성상 계획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춤을 만드는 방식도 전환점을 맞았다"고 털어놨다.

'그 후 1년'에는 안무가들이 주목한 가치와 개념이 춤의 형태로 녹아 있다. '그 후 1년' 프로그램 중 하나인 권 안무가의 공연 '작꾸 둥굴구 서뚜르게'는 생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몸짓이다. 권 안무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장 문이 닫히면서 예술인들은 국가의 지원대상이 됐다. 생계형 예술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존의 방식이 창작의 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시대에 최우선 가치가 된 생존을 다루면서 권 안무가는 심리학을 무용에 접목했다. 권 안무가는 "호모사피엔스를 비롯해 오랜 시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무기 중 하나는 귀여움이었다"며 "생존의 방법론으로서 귀여움을 춤으로 표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권 안무가는 무대 위에서 '베이비 스키마(Baby Schema)'라는 진화심리학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통상 귀엽다고 할 때는 작고, 둥글고, 서투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어린아이나 동물의 새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권 안무가의 공연 제목은 귀여움의 세 요소를 아기처럼 발음한 것이다.

김 안무가의 경우 시간에 주목했다. 그는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간이 낯설게 다가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개념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김 안무가에게 시간은 공간을 의미한다. 또 공간은 몸과 이어지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간을 표현하는 일은 공간을 이동하는 작업이다. 김 안무가는 "공간의 기본 속성은 점이고, 세상은 무수히 많은 점들의 집합체"라고 했다.

김 안무가의 공연에 '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배경이다. 이 작품은 '시간=공간=몸'이라는 구조에 뿌리를 두고, 무용수들이 시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구체적으로는 시간의 거리와, 확인, 가능성 등을 상징하는 공연이다.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시간을 공감각화한 셈이다. '점.'의 또 다른 특징은 무대에 자리 잡은 거대한 풍선이다. 이 풍선은 공간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풀어오르고, 무대 공간을 점점 더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 안무가는 "춤출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사라졌을 때 무대 위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을 출지, 그 무질서함과 즉각성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공연 주제는 시의성이 강하지만, 사실 안무가의 창작 의도가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권 안무가는 "현대무용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최고의 관객 평은 '뭔지 모르겠는데 재미있다'라는 반응"이라고 했다. 김 안무가도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공연이 아닌 만큼, 이 작품을 통해 질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후 1년'에는 두 안무가의 작품에 더해 스페인 출신의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의 무용 '승화'가 무대에 오른다. 당초 다음 달 공연에 함께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내한이 불발되면서 아구아데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필름 형식으로 공연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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