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급증했다. '제로 웨이스트'를 표방한 가게들이 늘고 있고, 서점에는 비건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띈다. 서울의 한 대형 카페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한, 땅속에서 퇴비가 되어 사라진다는 100% 천연 커피 연필을 나눠 주기도 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이제야 하나의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면 11년째 묵묵히 공연 작업에서 실천해 온 곳이 있다. 바로 '예술텃밭'이다.
'예술텃밭'은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2010년 강원 화천군의 한 폐교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됐다. '뛰다'의 단원 14명이 화천의 한 폐교를 손수 고쳐서 사용한 것을 계기로, 이후 공공 지원금까지 받으면서 규모가 커졌다. '예술텃밭'은 '뛰다'의 창작공간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다른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으로 확장돼 사용되고 있다. '뛰다'를 이끌어온 연출가 배요섭은 '순환'을 자신들이 지향하는 예술적 가치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술 작업의 결과물들이 물질적 잔해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작업의 밑거름이 되어 재사용되고 순환되는 방식들을 찾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렇게 자연의 흐름과 순환 안에서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예술작업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예술텃밭'이 탄생했다.
그간의 활동은 마치 집 앞에 딸린 작은 텃밭을 정성스레 가꾸는 마음을 담은 듯하다. 그중에서도 2014년부터 5년간, 매년 여름에 화천 주민들과 함께한 야외 공연 '낭천별곡'이 주목할 만하다. '뛰다'의 단원과 프리랜서 예술가 20명, 지역 주민 50여 명, 군인 40여 명이 한 달간 만든 대형 인형 커뮤니티 공연이었다. 화천의 여러 설화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인간들의 욕심으로 대지의 어머니 마고할미가 아프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다같이 모여서 만든 10m가 넘는 용, 대왕 지네, 6m에 이르는 새와 까마귀들, 개구리, 꽃과 나무 인형들로 '낭천별곡'의 참여자들은 화천 읍내를 돌며 퍼레이드와 깜짝 공연들을 펼쳤다.
'예술텃밭'은 일찍이 극장을 벗어나 지역 커뮤니티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예술을 실천해 왔지만 규모는 국제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년 웨일즈 국립극단과의 협업으로 '예술가들의 놀이터'라는 레지던시(거주형 창작 작업)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영국, 한국, 인도, 일본의 예술가 16명이 모여서 화천이라는 지역을 소재로 창작 작업을 벌였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폐쇄성과 경직성을 덜어냈다. 이를테면 빈집을 청소하고 그 안에서 글을 쓰고 노래하는 배우 혹은 이웃집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공연으로 풀어내는 시간들이었다. 약 열흘에 걸쳐 마을 곳곳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 즉흥 공연들이 벌어졌다. 배 연출가는 이 프로젝트를 "예술가들이 이 공간을, 이 마을을 어떻게 살아있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으로 기억했다.
이처럼 '예술텃밭'은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나무와 풀과 구름과 하늘과 땅이 그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예술텃밭'이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점이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지난해부터 프로듀서 그룹 도트와 함께 '예술텃밭 기후변화 레지던시'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해 예술가들이 무엇을 감각하며 어떠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도다.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하는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들, 인문학자, 지역주민들이 참여한다. 매월 일주일간 '예술텃밭'에서 공동 리서치, 강연, 온라인 대화가 이어지고 개별 예술가들의 작업도 6개월간 이어질 예정이다. 11월 마지막 주에 그 결과물들이 전시와 공연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공유된다.
배 연출가는 '예술텃밭'이 예술가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그들이 편하게 와서 쉬고 작업하고 갈 수 있는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신자본주의, 인간중심주의, 새로운 파시즘의 물결로부터 거리를 두고 묵묵히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예술가들, 농부들, 보통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