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희망고문' 성주...지원사업 한다 한다 5년째 말로만

입력
2021.05.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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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건의 2조 불구 달랑 200억 완료
김부겸 총리 후보자·국방차관 지원 언급 
"사드 임시 배치 상황 지원 걸림돌" 주장에
주민들 "의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 반박
"언제까지 기지 앞에서 싸움을 해야 할지"


3일 오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가 배치돼 있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진밭교 인근. 미군 헬기가 수차례 정상 기지에서 이착륙을 반복하는 사이, 한편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경찰 버스와 차량이 진밭교로 몰려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참이다. 그러나 기지 길목인 진밭교 앞에 '초소'를 설치해 보초를 서고 있던 주민들 표정은 요란한 헬기 소리에도, 몰려든 경찰의 위세에도 평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5년 동안 숱하게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기지로 군 차량이 들 때마다 벌이는 싸움이지만, 그 싸움보다 더 힘든 것은 언제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성주가 5년째 '사드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숙원사업은 지지부진하고, 주민들은 올해만 3차례 경찰과 이곳에서 충돌했다. 모두 기지 안으로 장비가 반입되던 날이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재민 국방부차관이 최근 성주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6일 성주군 등에 따르면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지난 2017년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소성리 롯데스카이힐 성주컨트리클럽 골프장에 6기의 사드 발사대를 배치했다. 당시 성주군이 정부에 건의한 현안은 대구~성주 고속도로, 대구~성주 경전철 사업 등 17건, 2조2,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완료된 사업은 권역별 농산물선별센터와 초전대장길 경관 개선, 소규모 지방도 확장 공사 등 3건 2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이뿐이 아니다. 정부가 일반환경영향평가 이후 정식 배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재 임시 배치 형식으로 사드기지가 운용되고 있어 주민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드 갈등이 계속되자 박재민 차관은 4일 성주군을 방문해 민관군상생협의회 발족 문제를 협의하면서 "빠른 시일 내 상생협의회를 출범해 지원사업 추진 동력을 확보하겠다"며 "소성리 주민들과 반대 단체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김부겸 총리 후보자도 이에 앞서 성주 사드와 관련해 "장병들의 기본적 시설 공사에 대해선 주민들이 양해해야 한다"며 "성주에 약속한 지원 사업은 절차를 밟아 꼭 챙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주군은 이들의 약속이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임시 배치된 사드가 정식 배치돼야 본격 지원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반대 여론이 성주 안팎에서 적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정부가 그동안 지원사업 요청에 대해 임시 배치 상황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으나, 이제 민관군 상생협의체를 제대로 운용하자는 입장이라 희망을 걸고 있다"며 "정부 의지가 확고하다면 임시라는 상황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사드 문제와 지원 사업을 연계하면 곧바로 집단행동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종희 사드반대 대책위원장은 "주민 생명을 담보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사드 배치로 평화로운 일상과 고통이 깨진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게 우선임에도 지원 사업을 먼저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종희 위원장은 또 "사드 반대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했던 송영길 민주당 대표 등 정치권이 책임 있게 행동하기 바란다"며 "정부가 사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성주 사드기지에는 한미 장병 400여 명이 기존에 있던 골프장 클럽하우스와 컨테이너 등을 이용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국방부는 장비 반입 12시간 전에 주민들에게 통보하고 있지만, 5년째 기지 안으로 군사 장비와 공사 자재, 물자가 반입될 때마다 주민과 반대단체 회원들의 저지 시위가 되풀이되고 있다.

성주=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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