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무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이 차관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적용해 이달 안에 검찰에 송치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르면 이달 중순 이 차관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수사 당국이 이 차관 기소를 단행할 경우 법무부 차관직 유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이 차관에게 증거인멸교사 혐의를, 폭행 피해자로 알려진 택시기사 A씨에게 증거인멸 혐의를 각각 적용해 이달 중 검찰에 불구속 송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올해 시행된 검·경 수사권조정에 따라 경찰은 기소 의견 사건만 검찰에 송치하기 때문에, 이번 방침은 경찰이 이 차관의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차관은 차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6일 저녁 서초구 자택 인근에 정차한 택시 안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는 A씨의 멱살을 잡는 등 폭행하고, 이틀 뒤 A씨를 만나 합의금을 제안하며 택시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요구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휴대폰으로 촬영해 저장했던 블랙박스 녹화 영상을 삭제해 폭행 증거를 없앤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차관은 일시정차를 포함해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경우 적용되는 특정범죄가중법(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도 받고 있는데, 이 부분은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다음 주까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마저 확인한 뒤 이달 중순쯤 이 차관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이 차관이 소환 요구에 즉각 응할 경우 이번 달에 수사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는 마지막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거치려고 한다"며 "정리가 되는대로 이 차관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사건 내사 과정에서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고도 묵살한 의혹을 받는 서초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대해서도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특수직무유기는 특가법 수사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그 직무를 유기할 경우 적용되는 법률"이라며 "이 차관의 폭행이 특가법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수사관이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의심되면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담당자인 B 경사가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보고라인에 있는 담당 과장 역시 부적절한 처리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B 경사는 이 차관 사건을 단순 폭행으로 보고 당사자 간 합의 등을 이유로 내사 종결했지만, 최초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특가법 위반 혐의를 둔 사실이 드러나 '봐주기 수사' 논란이 잇따랐다. 이 차관에게 특가법 위반 혐의를 최종 적용할지 여부는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 소관이지만, 경찰은 수사 마무리 시점에서 이 사안에 대한 자체 결론을 내놓을 계획이다.
경찰은 이 차관이 사건 직후 B 경사와 세 차례 통화를 시도한 것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 13일 두 차례, 같은 달 16일 한 차례 B 경사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했지만 실제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B 경사 등 수사팀이 폭행 사건 내사를 종결하는 과정에서 이 차관 측이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차관이 실제 기소될 경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현 정부 법무부 수뇌부 출신이 재판에 넘겨지는 불명예가 되풀이된다. 더구나 장관 퇴임 후 기소된 조 전 장관과 달리 이 차관은 기소 이후 사퇴 논란에 휩싸일 공산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학의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역시 기소될 경우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