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끝>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공공도서관, 대형서점에 비치된 어린이책들조차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교묘한 방식으로 성역할 고정관념과 약자에 대한 조롱을 일삼는다. 애니메이션은 차별과 혐오를 웃음 소재로 삼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부모는 어떻게 좋은 콘텐츠를 골라낼 수 있을까. 또 아이가 유해한 콘텐츠를 접한 후에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성평등 그림책 구독 서비스인 ‘우따따’를 운영하는 유지은 딱따구리 대표는 17가지 기준으로 책을 선별한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외국 교육청의 성평등 교육 가이드라인과 논문, 미국의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만든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 테스트’를 참고해 만든 기준이다. 한국일보는 ‘우따따’의 기준을 참고해서 5가지 질문을 추렸다.
① 성비 : 주인공과 보조 캐릭터의 남녀 성비가 동일한가.
② 고정관념 : 남자 아이는 개구쟁이에 자주 말썽을 일으키고, 여자 아이는 겁이 많고 다른 캐릭터를 보조하기만 하는가.
③ 외모 :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주인공이고, 뚱뚱한 사람은 희화화하는가.
④ 직업 : 교장 선생님, 의사, 사장, 조종사 등은 남성이고 평교사, 서비스직은 여성인가.
⑤ 가족 : 가정을 부양하는 듬직한 남편, 살림 잘하고 인내심 많은 아내, 애교 많은 딸, 사고만 치는 아들이 나오진 않는가.
또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거나, 배경에 젊은 남녀만 등장하는지 등도 살펴보면 좋다. 익숙한 것들에 질문해보면 책 속 고정관념과 차별이 매직아이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애니메이션 등 다른 콘텐츠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재미를 포기하고 교육만 강요할 순 없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문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 그림을 보면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작품이 좋다”고 권했다. 어렵다면 그림책·동화책 소개서나 비평서를 한 권 읽어보는 것도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 스스로가 아동문학의 팬이 되는 것.
김 평론가는 “부모가 팬이 되면 정보가 많아지고, 자녀와 함께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면 어린이에게도 훨씬 더 좋은 독서가 된다”고 말했다.
좋은 콘텐츠를 고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 아동 콘텐츠업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 평론가는 “좋은 서사와 그림이 담긴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는 싫다’는 독자들의 균형 잡힌 반응에서 시작된다”며 “좋은 책을 찾아서 읽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아동 콘텐츠에 대한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는 나쁜 콘텐츠를 접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혼자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는 나이가 되면 아이 머릿속에 갖가지 편견이 터를 잡아도 부모는 모를 수 있다.
이때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봤던 콘텐츠 중 재미있었거나, 이상했던 것 등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일기를 써보게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이 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해요. 아이들이 성인 관점에서 문제점을 짚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아이가 쓰는 걸 그대로 둬야 아이의 성찰이 됩니다. 아이들이 쓴 것을 봐뒀다가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욕하는 건 안 좋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얘기하면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요.”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설명이다.
강은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편견이 담긴 콘텐츠를 본 후에 부모가 가르치듯이 말하지 말고 ‘어떻게 생각해?’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아이들의 편견에 대한 감수성은 이렇게 조금씩 발달한다”고 말했다.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 김지은 평론가는 “부모가 ‘차별하지 마라’ ‘혐오하지 마라’같이 어떤 가치를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은 덜 효과적일 수 있다”며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다른 생명을 지켜봐야 하는지’ ‘좋은 관계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를 책 안에서 장면과 서사로 다루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좋은 책은 자극적인 콘텐츠들로부터 중심을 잡도록 돕는다. “차별, 혐오 콘텐츠로 나쁜 호기심을 자극해서 돈을 버는 미디어가 많아 아이들도 차별, 폭력적인 언어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책은 정제된 언어와 예술적인 방식으로 예술가의 윤리가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기울어진 구조를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있죠.”(김지은 평론가)
<글 싣는 순서> 뒤로 가는 아동콘텐츠
<1>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 빠지다
<2> 모욕을 주는 성교육
<3> 재미로 포장된 외모비하
<4> 차별 없는 아동콘텐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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