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청년 이야기가 많아졌습니다. 급격히 청년 ○○ 자문위원회도 많아지고요. 보궐선거 이후에는 긴급 간담회도 많아졌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상담하는 사람이니, 요즘 청년들의 상황을 최전방에서 보는 목격자라는 이유로 종종 불려갑니다. 가보면 개회사는 대부분 비슷합니다. 청년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한번쯤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열어주자. 뭐 그런 얘기인데요. 막상 정책 자료집을 열어 보면, 음? 싶습니다. ‘이 정도 가지고 그런 사회가 올까?’ 싶은 기분이랄까요. 액수도, 대상층에 대한 고찰도 영 아쉽습니다. 그러다 오늘은 문득, 회의 중에 왜 로제 떡볶이가 떠올랐는지요.
로제 떡볶이는 고추장이랑 크림을 섞은 건데요. 저는 느끼해서 살짝 별로더라고요. 그런데, 어쩜 친구들이랑 배달음식을 먹으면 다들 로제 떡볶이를 시키는지, 난처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음식 시키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요. 배달이 늦게 오냐고요? 아니요. 주문하기를 누르기까지가 오래 걸립니다. “야 우리 이거 먹자!”라고 말해도 다들 이 말을 하거든요. “잠깐, 리뷰 봐야지.”
다들 인정한 대세음식을 먹는 것, 주문을 하기 전에 사람들의 별점과 리뷰를 꼼꼼히 챙겨보는 것.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인정한’ 음식을 선택하는 게 청년들에게 꽤 일반적인 흐름이 되었습니다. 점점 자신의 취향을 가지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검증한 것을 선택하는 이 흐름. 주체성 없는 모습처럼, 혹은 수동적인 모습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는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만의 음식 취향을 가지려면,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팍팍한 주머니 사정이라면 어떨까요? 누구라도 ‘실패하지 않는 음식’을 고르게 되지요. 여러 번 선택하고, 반쯤 먹다 “버리자! 돈 버린 셈 치자!” 라고 말하는 게 사치니까요. 이 맥락에서, 자신만의 음식 취향을 찾으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한번 실패해도 또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주머니 사정은 되어야지요. 엄청 부자는 아니라도, 한번쯤은 ‘검증되지 않은 음식’을 시킬 수 있을 정도, 모험을 해볼 정도의 여유 말입니다.
배달음식 고르는 것도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하물며 인생의 선택지를 고르는 건 더 ‘안전빵’을 따지는 거, 이상한가요? “한번 도전해봐라. 자신만의 길을 가라!” 라는 말을 전하려면, 적어도 우리 사회가 두세 번, 실패하고 이거 저거 경험하면서 지그재그로 걸어가도 괜찮은, 최소한의 안전망은 구축된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요?
고생을 하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사회가 아니라,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사회. 저임금 일자리를 가서 경력을 쌓으면 다음 기회가 오는 게 아니라, 저임금 일자리에서 평생 머무를 것이 빤히 그려지는 사회. ‘도전’은 마치 리뷰에 온통 별점 한 개인 식당에서 굳이 시켜 먹는 것 이상으로 무모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뭐 한번쯤 그런 실수해도 괜찮지 않냐고요? 재선택의 시간도, 자원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충분한 정책적 안전망을 구축하기도 전에 자꾸만 도전을 언급하는 것. 청년들에게 이런 느낌이진 않을까요? “다들 먹는 것만 따라 먹지 말고,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봐. 그래야 자기 입맛 찾는다니까? 음... 3,000원 정도 있으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