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 파동' 다음달이면 해소? 농가 "닭은커녕 병아리도 없다"

입력
2021.05.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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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 AI 유행으로 산란계 대량 살처분
병아리 품귀 현상 빚으며 계란 생산 더딘 회복
농가 "닭 개체수 회복에 시간 소요 불가피" 지적

지난달 30일 찾은 경기 포천시 양계장. 닭 울음소리가 가득찼어야 할 계사(鷄舍)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양계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닭 한 마리, 계란 한 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만 해도 닭 30만 마리가 하루에 계란 27만 개를 낳던 대규모 농가였던 이곳은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에 따른 예방 차원에서 올해 2월 기르던 닭을 전부 살처분했다. 2016년 AI 유행 당시 예방적 살처분 기준(발병 농가의 반경 500m 이내)이라면 살처분 대상이 아니었지만, 올해는 반경 3㎞ 이내로 기준이 강화돼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양계장 운영자 정모(55)씨는 "지금 양계장에 있는 건 부화한 지 열흘 남짓한 병아리들이 전부"라며 "병아리가 다 크는 가을이 돼야 평상시의 3분의 1 수준의 계란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적으로 AI가 확산된 여파로 양계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계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살처분을 기점으로 산란계가 성체로 자라는 기간이 경과한 다음 달부터는 계란값이 안정될 거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분위기다. 지금처럼 생산 기반이 철저히 무너진 상황에서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병아리 사육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란계 수 회복? 병아리도 없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계란의 시중 판매가는 한 판(30개) 기준 7,000~8,000원 수준이다. 9,000원까지 치솟았던 연초보다는 다소 내렸지만 예년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이 몇 달째 이어지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대파 한 단(1㎏) 가격이 8,000원을 넘어 집에서 화분에 파를 직접 기르는 '파테크'까지 성행하게 했던 '금파' 파동에 빗대 '금란(金卵)' 파동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장바구니 물가는 물론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허덕이는 음식점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란값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AI 유행으로 연말 연초에 산란계 1,700만 마리가 살처분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닭의 성장 기간이 22주인 만큼 오는 6월 중 산란계 수가 평년 수준을 회복하면 계란값도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양계 농가는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모른다고 타박한다. 당장 산란계 사육의 출발점인 병아리 수급부터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산란계를 키우는 양계장은 병아리 육성장에서 2~3개월가량 사육한 중추(중닭)를 사서 더 키우거나 직접 병아리를 사다 기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병아리 모체인 닭이 대량 살처분된 탓에 병아리 육성장부터가 병아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충남 천안시의 육성장은 지난해 말 병아리 대부분을 양계장에 넘긴 이후 병아리를 구하지 못해 일손을 놀리고 있다. 경기 평택시의 육성장은 일대에 AI가 발병하는 바람에 병아리 사육을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했다.

품귀 현상에 병아리 몸값도 치솟았다. AI 유행 이전 마리당 1,000원이던 가격이 지금은 1,700원을 넘는다. 병아리 가격 변동은 산란계와 계란 가격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병아리 육성장 운영자 김모(60)씨는 "어미 닭이 많이 죽어서 병아리 수급이 잘 안 되고 있다"며 "병아리값에 사료값까지 올라 중닭 한 마리 가격이 평년 3,500원에서 2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양계업 구조 모르면 계란값 안 잡혀"

병아리가 충분히 공급된다고 능사가 아니다. 예컨대 본보가 취재한 포천 양계장은 병아리 10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이는 양계장 내 3개 계사 중 1개만 채울 수 있는 수효다. 병아리를 더 사서 계사 3곳을 모두 병아리 사육에 쓰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병아리를 70일 정도 중닭으로 키워 다른 계사에 옮긴 뒤 새로 병아리를 들이는 순차적 사육 방식을 택해야 달걀을 사시사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영자 정씨는 "이렇게 한 동씩 채워나가면 모든 닭이 알을 낳기까지 1년 넘게 걸릴 것"이라며 "병아리가 제때 투입되지 않으면 정상화까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계업의 선순환 구조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 데에는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의 여파도 작용하고 있다. 2017년 8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시작된 이 파동은 계란값 폭락으로 이어졌다. 초기엔 불량품 대량 폐기로 계란값이 잠시 상승했다가 소비 심리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결국 계란 한 판 가격이 3,000~4,000원으로 급락한 것이다.

이로 인한 양계농가의 경제적 타격이 이번 살처분 사태로 더욱 심화하면서 산란계 개체수를 회복하기 위한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경기 광주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이모(59)씨는 "그간 계란값이 워낙 싸다 보니 소비자들은 가격이 폭등한 것처럼 느낄 것"이라며 "정작 산란계 농가는 3년 전부터 이어진 적자로 빚더미에 앉아 있다"고 토로했다.

양계업계는 정부가 양계산업의 구체적 현실을 파악해야 계란 수급 안정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AI를 비롯한 가축 유행병에 대해 일괄적 살처분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백신 접종 등 확산 예방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살처분을 하더라도 생산 기반이 신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보상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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