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으론 미·중을 상대할 수 없다

입력
2021.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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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경쟁의 속성상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립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고 점차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특히 정치나 외교·안보차원에서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방의 가치와 사회주의적 국가자본주의라는 중국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타협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만 문제나 동남아의 해양 영토분쟁도 미국과 중국과 대치할 경우 어느 쪽도 쉽게 양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도 때론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막대한 비용이 초래될 경우 발생한다. 즉, 장기간에 걸쳐 큰 비용을 들여 상대방을 제압할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보다 경쟁은 계속하되 중간중간 사안별로 잠정 타협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큰 기대이익을 가져다 줄 경우이다. 사실 현재와 미래의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70% 수준이지만 2026년에는 미국의 8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구매력을 감안한 GDP는 중국이 23.3조 달러로 21.4조 달러의 미국을 넘어섰다. 물론 1인당 GDP는 아직도 중국이 미국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체제에서 GDP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자원의 분배를 인위적으로 특정 부분에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의 잠정 타협 가능성은 차세대 기술경쟁에서도 가능하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차세대 핵심 기술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5G나 인공지능(AI)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특허를 가지고 있다. 기술특허를 분석하는 IPlytics 자료에 따르면 5G 관련 세계 특허의 약 15%를 중국 회사인 화웨이가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퀄컴이 11%로 그 뒤를 잇고 있다. 3위도 중국의 ZTE로 약 10%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삼성은 0.1%p 차이로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공지능 부문도 지난 10년간 미국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우리나라의 삼성과 중국의 텐센트와 바이두가 세계 특허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개발된 기술을 값비싼 돈을 들여 다시 개발할 경제적 유인은 매우 작을 것이다. 반면 상호특허사용 인정을 통해 싼 값으로 상대방의 기술을 이용하여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는 충분히 크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과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기술경쟁을 하면서도 때론 서로 타협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미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로 갈등과 대립을 계속하기 보다는 경쟁속에서 때론 사안별 타협을 하는 경쟁적 파트너 관계(rivalry partnership)가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와 백신도 상호 협력이 가능한 분야다. 상호 타협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후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역할도 이러한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가 의심을 할 수 있는 모호한 입장을 보다 타협과 절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상황과 논리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중견통상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