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사양 포기하면 차값 할인"… 반도체 품귀에 등장한 웃픈 '마이너스 옵션'

입력
2021.05.02 19:45
17면
현대차·기아, 첫 도입… 카니발·K8 등 "옵션 빼면 할인"
반도체 수요 줄이고, 납기 단축해 판매량 유지 전략
푸조·GM은 아예 반도체 소요 편의사양 제공 중단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자동차 업계가 궁여지책으로 '마이너스 옵션'까지 속속 내놓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최근 인기 차종의 옵션 중 일부를 포기할 경우 가격을 할인(마이너스 옵션)해 주고 있다. 편의사양에 들어갈 반도체를 아껴 필수부품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기아가 마이너스 옵션을 적용한 대표 차종은 카니발과 K8이다.

먼저 카니발은 노블레스 이상 트림에 기본 적용되는 '스마트 파워 테일게이트' 기능을 제외하면 40만 원을 할인해준다. 트렁크를 자동으로 여닫는 인기 기능이지만, 반도체가 급해 마이너스 옵션의 우선 대상이 됐다.

카니발의 전동 슬라이딩 도어를 자동 조작할 수 있는 스마트키 공급도 중단했다. 기아는 반도체 수급이 정상화되면 정상적인 스마트키로 교체해 줄 방침이다.

최근 출시된 준대형 세단 K8도 마이너스 옵션 판매에 들어간다. 노블레스 이상 트림에 기본 적용되는 후방주차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과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을 뺀 선택지를 추가하고, 차량 가격을 40만 원 낮췄다.

마이너스 옵션은 반도체 품귀 상황에서 최대한 감산이나 휴업 없이 생산을 이어가기 위해 현대차·기아가 이번에 처음 꺼내든 자구책이다. 반도체 수요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동시에, 납기 지연 없이 판매량을 유지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반도체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반도체가 필요한 편의사양을 과감히 없애고 있다. 프랑스의 푸조는 최근 308 모델에 기본 적용하던 디지털 계기판 대신 눈금과 바늘이 달린 구형 아날로그식 계기판을 넣고 400유로(약 54만 원)를 할인해 주기로 결정했다. 푸조 측은 "디지털 계기판에 들어가던 반도체를 안전·성능 관련 필수 부품으로 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GM 역시 8기통 5.3ℓ 대형 엔진을 장착한 일부 차종에 당분간 엔진 출력 조절 장치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이 장치에도 반도체가 필수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완성차 업계의 감산 소식은 잇따르고 있다. CNBC 등에 따르면,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2분기가 가장 어려울 것"이라며 "당초 20만~40만 대의 생산 차질을 예상했으나, 올해 영향을 받는 생산 대수는 11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유럽 업체들도 공장 가동 중단과 근로 시간 단축에 들어갔으며, 도요타·닛산 등 일본 업체도 감산이 이어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의 감산·휴업이 장기화하면서 부품 업체의 유동성 위기 우려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일부 부품사는 주 3일만 근무하는 실정"이라며 "코로나19, 쌍용차 법정관리, 반도체 부족 등 악재가 겹치면서 부품업계의 체력이 많이 빠져있기 때문에, 현 상황이 장기화하면 영세 부품업체의 연쇄 부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김경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