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신의 한수'... 경영권은 굳히고, 재산은 남매간 균등 배분하고

입력
2021.04.3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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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지분 →이재용 부회장 예상 벗어나
가족과 균등 배분하면서도 이 부회장 체제는 강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유산으로 남긴 보유 주식의 상속내역이 공개됐다. 삼성전자 지분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몰아줄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법정 상속 비율대로 배분됐다. 반면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상 가장 핵심인 삼성생명 지분을 다른 형제보다 많이 물려받으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시장가치가 가장 큰 삼성전자 지분을 가족과 균등하게 나누면서 가족간 화합도 다졌다는 평가다.

전자는 나눠 갖고 생명은 이재용 부회장이 절반 확보

30일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SDS 등 삼성 계열사는 상속에 따라 변경된 이 회장 및 총수 일가의 주식 변동 현황을 공시했다. 이 회장이 남긴 유산의 70%는 삼성전자(4.1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6%), 삼성SDS(0.01%) 등 계열사 지분으로 평가액은 19조 원 규모다. 상속 비율에 따라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까지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이 회장의 보유 주식 배분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SDS 지분의 경우엔 법정 상속비율에 따라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 가장 많은 33.33%씩을 물려받았다. 이어 이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세 자녀에겐 각각 22.22%씩 균등하게 돌아갔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 지분의 경우엔 이 부회장에게 50%, 이 사장에게 33.33%, 이 이사장에게 16.66%씩 주어졌다. 상속에 따라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 회장에서 삼성물산(19.34%)으로, 2대 주주는 이 부회장(10.44%)으로 바뀌었다.

이 부회장, 경영권은 강화하면서 상속세 부담은 낮춰

재계에선 이번 상속안을 두고 '신의 한수'로 표현한다. 우선 균등 분배로 가족 간의 화합을 다졌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고, 나머지 비주력 계열사 지분을 가족에게 나눠줄 경우 생길 수 있는 분란까지 염두에 뒀다는 시각에서다. 이 부회장(1.63%)을 비롯해 홍 전 관장은 2.3%, 이 사장 0.93%, 이 이사장 0.93%씩 삼성전자 지분을 분배한 부분도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한 대목이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도 삼성 계열사와 가족들의 지분을 더해야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노린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가 가능하다. 삼성그룹의 3세 경영을 이어갈 이 부회장이 향후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선 가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셈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를 강화시킨 부분도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그룹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0.7%에 그친 상황이다. 이에 재계에선 이 부회장이 부친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4.18%) 전부를 물려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경우엔 이 부회장이 감당해야 할 9조 원대의 상속세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다. 향후 삼성전자나 삼성물산 등 주력사의 배당성향을 높인다고 할지라도 이를 이 부회장이 혼자서 부담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규모다.

이에 유족들은 이미 이 부회장이 최대 주주인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배와는 무관한 삼성SDS, 그리고 상속 규모가 가장 큰 삼성전자까지 법적 상속 비율대로 나누는 한편 삼성전자를 직접 지배하고 있는 삼성생명을 이 부회장에게 추가 분배하는 묘수를 꺼냈다.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지배구조를 적극 활용한 셈이다. 이에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1대 주주인 삼성생명 지분 10.44%, 삼성전자 2대 주주인 삼성물산 지분 18.13%와 함께 삼성전자 지분 1.63%까지 확보하게 됐다. 아울러 이 부회장 등 가족들이 12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도 균등하게 나눠서 부담하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주가는 계속 오르는데 삼성생명이나 삼성SDS 주가가 떨어지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가족 간 상속 이후 감정 싸움이 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핵심 지분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면서도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인 경영 유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