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하이브에서 기자들 대상의 시연회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의아했다. 왜 하이브에서 정보기술(IT) 담당 기자들을 부를까. 하이브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바뀐 사명이다.
시연회는 하이브의 자회사인 하이브 에듀가 BTS 목소리를 활용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내놓은 IT 학습교재 ‘런! 코리안 위드 티니탄’(Learn! KOREAN with TinyTAN)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이 교재는 특이하게 ‘모티펜’(motipen)이라는, 글자를 인식해 음성으로 바꿔주는 TTS 도구가 들어 있다. 하이브 에듀에서 학습의 동기부여(motivation)를 하는 펜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모티펜을 교재인 책에 갖다 대면 해당 단어를 BTS 멤버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우리말,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선택할 수 있는 음성은 좋아하는 멤버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변경된다. 또 펜을 켜고 끌 때도 BTS 멤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말을 던진다. 시연회장에서도 펜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펜에 수록된 음성이 실제 BTS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AI)이 실제 BTS 멤버들의 목소리를 6개월 이상 학습한 뒤 만들어낸 인공 음성이다. 하지만 인공 음성인 줄 모를 만큼 발음이 자연스럽다.
이 교재는 꽤 많이 팔릴 듯하다. 비단 한글을 배우고 싶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BTS 팬이라면 필수 구입 상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BTS 팬인 주부가 이 교재를 어디서 구입하는지 물어왔다.
하이브가 IT 상품의 지속 개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 후속 콘텐츠를 내놓으면 거기에서도 이번에 구입한 모티펜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최영남 하이브 에듀 대표는 “다른 콘텐츠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모티펜을 개발했다”고 답했다. 즉 모티펜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겠다는 뜻이다.
하이브의 플랫폼 강화도구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제품을 아마존 등 다른 쇼핑몰에서 판매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다. 최 대표는 “아직은 계획이 없고 위버스숍에서 판매한다”고 말했다. 위버스숍은 하이브가 소속 연예인들의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이다. 이 상품은 결국 위버스숍의 팬덤을 높이는 도구가 될 것이다.
하이브의 IT 활용 전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소속 연예인을 활용해 영화나 드라마, 예능, 유튜브 영상을 찍고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기존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1차원 마케팅이다. 반면 지식재산권(IP)에 IT 기술을 접목해 게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서비스 등 종횡으로 확장하는 것은 3차원 마케팅이다.
하이브의 놀라운 점이 이 부분이다. 이들은 IT를 인프라 삼아 적극적인 외연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사고의 폭을 넓히면 AI 대화형 로봇(챗봇), 자율주행차, 개인형 이동수단(PM), 스마트 건강보조기기나 서비스 등 다양한 상품에 BTS 등 IP를 접목할 수 있다.
물론 걸리는 부분이 있다. 이 경우 소속 연예인 인기와 상품의 수명이 함께 갈 수 있다. 이 한계를 벗어나려면 다양한 아티스트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하이브의 방시혁 이사회 의장은 세계적 팝 가수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소속된 이카타 홀딩스를 인수했고, 유니버셜뮤직과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이 같은 하이브의 변신은 최근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도 주목했다. 타임은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을 선정하면서 ‘개척자’ 분야에 하이브를 넣었다. 100대 기업에 든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하이브뿐이다.
같은 소재를 갖고 있어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명운은 달라질 수 있다. IT를 활용한 하이브의 변신은 이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