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이 없던 예전 고등학생들은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되어 뚜껑을 열면 밥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도구 하나가 있다. 포크 겸용으로 끝이 갈라진 숟가락,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렀을까? 영어에서는 스푼과 포크를 합쳐 ‘스포크(spork)’라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포카락’이라는 말이 더 흔히 쓰인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그것은 숟가락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물건이나 현상이 등장하면 언제든 새로운 말이 생긴다. 카메라에다가 기록 장치 기능을 더한 것이 새롭게 나오면서 ‘캠코더’란 말이 생겼고, 감자와 토마토의 세포를 융합하여 얻은 채소에는 ‘포마토’라는 말이 붙었다. 사무실에 거주하면서 일하려는 수요가 생기면서 간단한 주거 시설을 갖춘 ‘오피스텔’이 나왔고, 학습도 놀이처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에듀테인먼트’가 등장했다. 라면을 떡볶이처럼 먹겠다는 ‘라볶이’부터, 소시지와 떡을 사이사이에 넣었다는 ‘소떡소떡’까지 신조어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말이 누군가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사람들의 편을 가르게 된다면 이는 달리 볼 문제다. 최근 한 기관이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린이, △린이, ☆린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하루 만에 캠페인을 종료했다. 여론과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요리 초보자라는 요린이, 주식을 잘 모른다는 주린이, 헬스 초보자인 헬린이 등 ‘◯린이’란 불완전하고 미숙한 초보자를 이르는 신조어다. 실제로 사전 속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인데, 애송이란 뜻의 ‘◯린이’는 오히려 어린이날을 보잘것없게 했다. 주목할 점은 이 말을 아동 혐오 표현으로 본 대중이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행사를 철회하게 한 것이다.
‘◯린이’는 ‘어르신’의 일부를 뒤에 붙인 ‘◯르신’이란 말과 대비된다. ‘◯르신’이라 불리는 이들은 ‘어르신’에 담긴 존중의 의미 때문인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린이’로 불리는 이들의 상황은 다르다. 비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대부분 사회적 약자거나 소수라서 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슬퍼도 웃는 표정으로 넘겨야 하는 어릿광대와 같다. 자극적인 말로 흥미를 끄는 것은 어느 곳에서든 생기는 현상이지만, 말이 힘의 논리를 담고 있는지 스스로 챙겨보는 것은 말을 쓰는 이들의 몫이다. 그것이 진정한 ‘어른스러움’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