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인 A씨는 26일 한달 만에 다시 짐을 꾸렸다. 목적지는 글로벌 기업 하청 신발공장들이 밀집한 양곤 외곽의 흘라잉타야. 수년 동안 일했던 곳이지만 막상 고향 에야와디를 떠나려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흘라잉타야가 지난달 14일 원인 미상의 중국계 공장 화재를 빌미로 하루 새 58명의 시민이 죽임을 당한 ‘집단학살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사건 후 급히 흘라잉타야를 탈출한 A씨의 마지막 기억 역시 장갑차와 군인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마을로 진입하던 장면이다.
같은 시간 에야와디에 들이닥친 진압군은 집집마다 달린 위성 안테나를 부수며 외부 소식 차단에 열을 올렸다. 검문에 불응한 인근 케일 마을 주민 한 명이 현장에서 사살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살기 위해 고향에 몸을 숨겼건만 군부의 만행은 도시나 농촌이나 똑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보내던 생활비가 끊겨 가족 생계도 위태로워졌다. 망설이던 A씨는 결국 양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돌아온 흘라잉타야 분위기는 지난달과 딴 판이었다. 최대 명절 ‘띤잔’ 연휴(13~22일) 뒤 A씨처럼 복귀한 시골 노동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기숙사 개념으로 운영되던 호스텔들 역시 하나 둘 영업을 재개했고, 운행을 멈췄던 택시도 거리에 등장했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중무장한 계엄군이 여전히 활보하고 있지만 그는 문을 연 공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미얀마 농촌 노동자들이 다시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현지에선 지난 보름간 1만명 정도가 양곤 인근 산업단지에 재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신발공장 노조 대표 응웻 이 윈은 “일부 공장들이 흘라잉타야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직원들에게 출근을 권유하고 있다”며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복귀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공장이 정상 가동되는 건 아니다. 생산을 시작한 공장들은 재고 물량만 소진할 뿐, 새로운 업무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30일 프론티어 미얀마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요즘 양곤 산업단지의 의류ㆍ신발 생산량은 2월 쿠데타 이전의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H&M과 베네통 등 글로벌 업체들은 이미 지난달 양곤 공장들과 하청 계약을 중단한 상태다. 기업들이 지불한 돈이 군부가 시민들을 억압하는 데 악용될 것을 우려한 탓이다.
농촌 인력이 선호하는 건설현장 일용직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쿠데타 이후 미얀마 건설 현장의 56%가 멈춰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지 봉제업체 관계자는 “쿠데타 군부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는 현장에 한해 인도적 차원의 사업을 하루 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