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로 모빌리티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도시

입력
2021.05.02 11:00
<20>베트남 호찌민·하노이

전쟁 이후 잿더미에서 한동안 미국의 제재로 농업국가로만 살아온 세월, 베트남의 도시화 율은 아직도 35% 미만에 그친다. 베트남전에서 부각된 정글의 이미지 때문에 수많은 정글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30% 언저리.

국토의 대부분이 논밭이며 계단 논은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 중 하나다. 최근 도시화와 산업화의 촉진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 정책을 스스로 만들고 이를 쓸 수 있는 기반이 아직은 부족하다.

때문에 미국과 관계 개선 이후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자본이 밀고 들어와 베트남 전체 투자 규모 중 외부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를 넘는다. 유럽연합(EU), 한국 등을 중심으로 한 교역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9년 기준 한국과는 700억 달러 가까이 됐고, 곧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청년들의 일자리는 넘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기업들의 구인난도 상당히 심각하다. 이는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 베트남 청년들의 현실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미스매칭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것.

외국 자본의 기업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지만, 베트남 청년들로서는 일 한 경험이 모자라고, 여러 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능력있는 소수를 채용하는 대신 낮은 인건비를 이용해 여러 명을 고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높은 성장률 유지 위해 문 활짝 열다

공산당 일당 체제 유지를 위해서 교육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했을까? 해외로 공부하러 떠났다가 속속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유학파들 중 일부는 사회·경제 상황을 보고 문제 의식을 갖지만, 대부분 전체적으로 비판 의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반대로 보면 외국 자본에겐 좋은 투자 여건으로 작용한다. 일당독재의 정치 시스템이지만 체제가 흔들려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안정과 대외 투자 환경의 유지는 공산당 정권에게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매년 국내총생산(GDP) 5~6%의 성장률을 이어오다 기대 이상으로 7% 성장률을 기록한 2018년 이후의 정책 방향은 성장세를 더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당국은 2030년까지 꾸준히 7%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신호로 ①주식 시장을 외국인에게 완전 개방했고 ②외국인의 기업에 대한 투자 지분을 51%까지 허용 ③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를 30%까지 허용하는 등 조치가 차례로 이어져왔다.

1986년 쇄신의 도이모이 정책은 개혁과 개방을 두 축으로 하는데, 이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영어보다 한국어 가능자가 월급 더 받기도

특히 베트남에선 한국어를 잘 하면 높은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어 가능자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

기본 생산직이 보통 500만 동(25만 원), 사무직이 600~700만 동(30만~40만), 영어 가능자 800만 동~1,000만동(40만~50만원)인데 비해 한국어 가능자는 1,500만 동에서 2,000만 동(70만~100만원)까지 치솟는다.

단 주로 통·번역 분야에서 일을 하지만, 서류 작성과 기획, 창의성 등에서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기업이 원하는 눈높이를 맞추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이 계속 늘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은 더 많이 필요해지고 자연스럽게 임금이 높아지고 있는 것.

호찌민의 한 유통회사 대표는 1983년생으로 20명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는 "다음 달에 10명의 직원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라며 "그 중에서도 한국어 능통자는 채용 1순위"라고 했다.

베트남 노동 시장이 커지면서 199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최고 종합기업으로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이나 금융 회사 또는 한국 기업 등 글로벌 기업을 다니는 이들은 1,000달러 정도의 월급을 받는데, 이들이 베트남의 소비 시장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영향으로 이들의 소비 패턴이 확산되면서 시장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의 소비 패턴은 한국 젊은이들의 성향과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더 넓게는 1980년~2004년 사이에 태어난 MZ세대가 있다. 이들은 베트남이 현재의 출산율 1.9대로 떨어지기 전 출산율 5.3~2.0을 찍은 다출산 시대에 태어났다.

모빌리티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다툼

베트남 시장이 주목받았던 이유 중 중요한 부분이 인구다.

베트남 인구는 9,600만 명 정도가 공식 통계지만 정확한 인구 조사가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미 1억 명을 넘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평균 연령이 32세라는 점. 30세 이하 인구가 전체 인구의 60%, 생산 가능한 65세 이하의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매우 젊은 국가다.

이들이 이끄는 베트남의 미래는 밝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의 눈 높이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인력에 비해 손 기술이 좋고, 높은 교육열로 인해 문해율이 90%를 넘는 등 더 뛰어나다는 인식이 뒤따르고 있다.

긴 해안선을 끼고 있어 동남아시아의 허브로 손색 없는 지리적 이점까지 더 하면 베트남의 성장세를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휴대폰의 대중화다. 휴대 전화 가격이 낮아지면서 어린이와 초고령자를 빼곤 대부분 인구가 휴대 전화를 쓰고, 이중 다수가 스마트폰 사용자다. 2017년 현지 인터넷 매체 VN익스프레스의 발표에 따르면 하노이와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권에서 2,350만 명, 지방에서 2,250만 명의 시민들이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따라 웹사이트와 앱 등 정보통신(IT) 기반의 스타트업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 그 중 그랩(grap)은 우버를 인수하면서 대표적 공유 모빌리티를 이끌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차량 호출 서비스로 시작한 그랩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베트남에서도 필수 기업으로 통한다.

그런데 차량 공유 서비스의 주 대상이 오토바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승용차를 활용한 모빌리티가 활발한 것과 달리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중심이다.

베트남은 '오토바이의 나라'라 불릴 만큼 오토바이가 많다. 베트남 전역에 4,400만 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보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 경우 늘 안전 문제가 걱정이지만, 저렴한 가격에 신속한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확실하다. 도심에서 30분이 걸리는 거리도 그랩을 사용하면 5만 동(2,500 원) 정도인데, 이 정도만 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저렴하다.

사실 베트남 정부도 너무 많은 오토바이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바로 환경오염 문제다.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매연 등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호찌민은 2030년까지 오토바이 없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오토바이의 장점은 여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

최근 베트남 사람들도 소득이 늘면서 승용차를 타는 인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데 부가세가 차량 가격의 두 배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매력 있는 중산층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트남 자동차 공업 협회에 따르면 2018년 회원사의 판매량은 28만 8,700대였으며, 전년 대비 6% 증가한 수치다.


그랩이 시장에 들어오자 기존 택시업계의 대표 주자 비나선(VINASUN)은 그랩이 불공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나섰다고 한다.

2017년 초 비나선의 고용 인원은 1만 7,000명이 넘었지만, 1만 명을 해고해 같은 해 연말 7,000여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비나선은 기사 개인이 사업자가 되는 프랜차이즈 형태로 직접 고용을 포기했다. 비나선 등 30개가 넘는 기존 택시회사들은 공룡이 돼버린 그랩과 경쟁하기 위해 차량 공유 앱을 만들고 경쟁에 나섰다.

택시고(Taxigo), 비부(Vivu), 티넷(Tnet), 셀로(Xelo), 바토(Vato)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을 장악한 그랩에 맞서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호찌민에서만 3만여 대의 공유 차량 중 2만 대가 넘는 차량이 그랩 소속이고, 1만 대 조금 넘는 차량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세 대 중 두 대는 그랩 차량인 셈이다.

물론 그랩은 그랩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승객 입장에선 그랩의 요금 할인이 없어지고 일반 시간대 보다 비용을 더 받는 피크 타임이 길어지면서 불만이 커졌다.

기사 입장에선 회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를 베테랑 20%, 초보 28%나 오른 것이 안타깝다. 과거보다 더 오래 일해도 수입이 줄어든 기사들은 차량을 사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고 이를 갚기 위해 하루 10~12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편 그랩은 2019년 연말까지 65억 달러(7조 4,000억 원) 투자금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한국의 현대차와 SK, 네이버 등 해외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투자자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랩은 모빌리티뿐 아니라 모바일 결제 시장과 그랩 푸드의 활동 지역을 애초 13개 도시에서 2019년 기준 178개 도시로까지 확장했다. 또 인도네시아에선 차량 호출 시장 점유율의 62%를 차지하는 등 동남 아시아에서의 플랫폼 거인으로 폭풍 성장을 이어나갔다. 최근 미국의 나스닥에 상장한다는 소식이 나올 만큼 전 세계 모빌리티 업계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파른 성장의 그늘이 커지는 베트남


한국의 도시화율은 90%를 넘어섰다. 시골은 도시로, 작은 도시는 더 큰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귀농 귀촌의 흐름이 있긴 하지만 도시로 향하는 이주 물결의 규모와 비교하기 어렵다. 베트남 역시 호찌민 인구가 1,000만(1,200만 이상이라는 얘기도 있음)을 넘어섰고, 하노이는 800만에 달한다.

특히 도시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갈수록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도시의 주택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새로 도시로 들어오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렵다. 집을 짓는데 시간이 걸리고,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집값 상승도 피하기 쉽지 않다.

부족한 대중교통 인프라도 큰 문제다. 베트남 정부는 일본 자금을 끌어와 호찌민에 지하철 1호선을 깔겠다는 계획은 2020년까지 완공으로 목표를 한번 바꾸더니 또 다시 2022년 마무리로 일정을 미뤘다.

겉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 항공편 운항이 전부 중단되면서 트랙을 설치할 해외 엔지니어들의 입국이 늦어졌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버스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결국 대부분 인구가 자신 소유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꼽힐 만큼 오토바이는 청소년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타는 인구가 늘수록 도시의 교통 사고는 늘고, 공기는 나빠진다.

최근 수도 하노이와 경제중심지 호찌민에는 교통 감시 카메라가 늘어나고 있다. 교통 체증을 줄이고 교통사고 발생율도 두 자리 이상 낮추기 위한 포석이다. 정부 관계 기관들이 교통 데이터를 공유하는 교통통제센터를 만드는 계획도 나왔다.

호찌민시는 스마트시티의 프로젝트의 하나로 주요 장소에 카메라 100여 대를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베트남 정부는 그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교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팔을 걷어부친 베트남 정부지만 여전히 풀지 못하는 걸림돌이 있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다.

공안이 각종 단속을 미끼로 업주들에게 뒷돈을 받아 챙기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공산당 정권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안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공안에 저항하는 이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한다. 실제 월급은 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공무원이 값비싼 자동차를 소유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총리는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고 선언했지만 하부 공무원 조직은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며 부를 쌓아가고 있다.

모든 베트남 공무원이 그럴 리 없지만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는 여전히 '성공하려면 경찰, 공무원 등이 돼서 한몫 챙기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를 반영하듯 베트남의 고교 졸업자 중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국방 관련 대학이나 의·약대 등으로 몰린다.

이 밖에도 성장 중심의 경제 체계를 추구하다 보니 양극화를 더 심각하게 하는 불평등 구조가 굳어져 가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손 잡으려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젊은이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과 한국인이 늘면서 베트남 거주 인구도 빠르게 늘어나 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호찌민 거리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넘쳐나고 있다. 빠르게 성장 중인 베트남 경제 그리고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일하는 베트남의 젊은 직장인들, 중소기업인들과 호흡을 맞추려는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한국과 적극적으로 교류를 해서 자신들의 발전 기회를 늘려가려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고급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고,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 제품이 아님에도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한국 브랜드인 것처럼 포장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한류 바람이 강하게 불고, 베트남의 성장 가도에 한국의 투자가 도움이 되며, 박항서 효과로 남아있는 과거의 앙금이 조금씩 호감으로 바뀐 지금 상황은 누군가의 기획으로 만들 수 없는 행운이다.

다만 베트남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베트남 친구로부터 들었을 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국적과 경제 수준, 생김새, 인종, 피부색, 언어와 성별 등과 상관없이 그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업신여김을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베트남과 교류가 늘어날수록 베트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의 자부심은 마음 속에 간직하되 그걸 앞세워 조금 덜 발전한 나라의 사람들을 깔보는 것은 위험하다. 자부심은 자부심대로, 존중은 존중대로.

문제없는 도시가 어디 있으랴. 하노이와 호찌민을 앞세운 베트남은 한동안 바퀴가 세차게 굴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