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몸통까지 '싹둑'... 가로수 죽이는 가지치기

입력
2021.05.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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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어린이공원을 찾았습니다. 도심 속 공원들이 대개 그렇듯 아담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다 왠지 불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줄지어 선 가로수들이 죄다 가지가 잘려나간 채 몸뚱어리만 서 있었던 거죠.

그중 메타세쿼이아 나무 위로 드론을 띄워 자세히 내려다봤습니다. 가지는 물론 몸통까지 '과하게' 잘려나가 있었고, 그 단면엔 선혈을 떨군 듯 붉은빛의 나이테가 선명했습니다. '팔다리'가 사정없이 잘린 몸통에선 어느새 파릇파릇한 새 이파리들이 돋아나 있었지만, 질긴 생명력이나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지기보다 애처로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거리를, 특히 번화가 주변을 걷다 보면 '닭발'이나 '전신주'처럼 생긴 가로수가 흔합니다. 가지의 80% 이상 잘라내는 과도한 가지치기, 즉 '강전정'을 당한 나무들이죠. 광화문과 종로, 서대문 등 서울 도심 도로변에서도 겨울과 봄을 지나는 사이 도로변 가로수들은 이처럼 '닭발' 모형처럼 변하곤 합니다.




가로수는 도시 미관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물질을 줄여주고 뜨거운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도시와 인간에게 꼭 필요해 '그린 인프라'라고도 불리는 '고마운' 가로수들이 인간의 모진 가지치기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생장을 돕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나무는 최대 25% 이내에서 '가지치기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가지치기는 나무의 골격을 훼손할 수 있고, 잘린 절단면의 상처가 썩어들어갈 경우 천공성 해충으로 인해 병원체에 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강전정으로 가지의 거의 전부가 제거된 '닭발 가로수'는, 그래서 사실상 죽어가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강전정이라는 극단적인 가지치기는 왜 이렇게 흔할까요. 이유는 다양합니다. 풍성해진 가로수가 점포 간판을 가린다, 가을에 열매가 떨어져 악취가 나고 불쾌하다, 쓰러질 위험이 있어 보인다는 등의 민원이 접수되면 지자체로서는 자르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 한 번 자를 때 많이 잘라야 경제적이고 품이 덜 든다는 논리도 작용합니다.



현대 전정 기법을 확립한 미국의 알렉스 L. 샤이고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 “올바른 전정은 나무의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나무의 방어 체계를 존중하며, 나무의 품위를 존중한다”고 했고, “그릇된 전정은 나무의 아름다움을 훼손하고, 나무의 방어 체계를 파괴하며, 나무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적었습니다.

최진우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는 "지자체나 한전의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위탁업체 입장에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대한 빨리, 마구 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닭발 가로수'는) 결국 '탐욕과 무지'가 만들어 낸 슬픈 결과"라고 전했습니다.

의정부의 어린이공원 주변엔 빈 까치집이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에 가지가 풍성할 때 까치는 집을 지었고, 가지치기가 끝나자 까치는 둥지를 버렸습니다. 둥지를 덮고 있던 가지와 이파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살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인간이 지금처럼 눈앞의 이익만 앞세우는 한, 언제고 이 가로수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까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도시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서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