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영국(약 6,600만 명)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일찌감치 백신 접종을 시작해서, 벌써 수천만 명이 한 번 이상 맞았다. 그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을 포함한 3분의 2 정도가(2,000만 명 이상) 한국 사람이 그토록 싫어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했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이런 영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백신 접종 속도는 더디다.
이렇게 백신 공급도, 접종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아침마다 불길한 뉴스가 들린다. 영국 변이, 브라질 변이, 남아프리카 변이, 인도 변이 같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 소식도 그 가운데 하나다. 덩달아 변이 바이러스는 기존 백신으로 몸에 생긴 항체의 보호 효과를 절반 아래로 떨어뜨린단다. 정말로 이러다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던 차에 신의철의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를 읽었다. 신의철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는 면역학자다.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연구 성과를 꾸준히 내놓아서 평소 ‘면역학 선생님’으로 여기며 말과 글을 경청하던 과학자다. 그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책까지 펴낸 것이다.
바이러스, 면역, 백신 세 키워드로 요령 있게 구성된 책은 마치 똑똑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선생님이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면역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장담컨대,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 한 권만 따라가며 읽으면 과학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사람도 두세 시간 만에 면역에 대한 최신의 과학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책을 읽고 나면, 뜻밖에 희망도 품을 수 있다. 이 책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변이 바이러스를 놓고서도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신을 맞으면 우리 몸속에서는 두 가지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하나는 우리가 뉴스로 자주 접한 ‘항체 면역’이다. 일단 맞춤 항체가 생기면, 특정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항상 한 가지로는 부족하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도 마찬가지다. ‘항체 면역’뿐만 아니라 백신은 ‘세포 면역’도 자극한다. 항체의 1차 방어선을 뚫고서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을 증식할 때, 세포 면역의 주인공인 T 세포(T Cell)가 등장한다. T 세포는 귀신같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서 제거한다.
가장 좋은 일은 입과 코로 들어온 바이러스가 아예 우리 몸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항체 면역). 하지만 항체 면역이 실패해서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그것의 증식을 막으면 문제가 없다. 세포 면역은 바로 이렇게 졸지에 바이러스 공장 역할을 하게 된 세포를 없앤다.
항체 면역이 뚫리더라도 세포 면역이 제대로 작동하면 설사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고, 대부분 감염된 사실도 모른 채 낫는다. 당연히 타인에게 전파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반갑게도, 세포 면역은 항체 면역과 비교하면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책을 읽어보길. 3강에 나온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서 조심스럽게 전망하자면, 많은 시민이 어떤 백신이든 접종만 잘하면 (설사 변이 바이러스 같은 장애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번 유행을 끝장낼 수 있다. 책 한 권을 읽고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명확히 알게 되고(백신을 접종하자!) 덤으로 불안 대신 희망까지 품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덧붙이면, 낡은 교과서로 배운 ‘면역 좀 아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흔히 면역을 나(아군)와 남(적군)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 바이러스 또는 미세먼지를 놓고 보면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꼭 필요해서 심지어 요구르트까지 챙겨 먹으며 북돋우려는 장내 세균은 나인가, 남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도 놀라운 통찰력을 준다. (역시 답은 책을 읽어보길! 5강과 6강에 나온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