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드로 시작·OB로 위기… 끝내 버디로 희망 낚은 박찬호

입력
2021.04.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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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 나선 ‘코리안특급’ 박찬호(48)는 무너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대 아시아 선수 최다인 124승에 빛나는 그의 코리안투어 무대 첫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 9개 홀을 보기 3개로 막아내는가 하면 정신력이 와르르 무너질 뻔한 후반엔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낚는 저력을 보였다. 20세기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때 국민들에게 힘이 돼 준 그는 중년이 돼선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박찬호는 29일 전북 군산컨트리클럽(파71ㆍ7,124야드)에서 개막한 KPGA 코리안투어 시즌 두 번째 대회인 군산CC 오픈에 정식 출전, 첫 라운드에서 버디 1개와 보기 8개, 더블보기 1개, 트리플보기 1개를 묶어 12오버파 83타를 기록했다. 프로 선수들과 같은 티박스에서, 정식 대회규정을 적용 받으며 대결한 데다 컨시드조차 없이 ‘땡그랑’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 입장에서 생중계까지 이뤄졌단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이었다. 그는 기권한 세 명의 선수를 제외하고는 뒤 에서 두번째인 152위로 1라운드를 마무리했다.

오전 8시 1번 홀에서 김형성(41), 박재범(39) 등 베테랑 투어 프로들과 한 조를 이뤄 출발한 박찬호는 전반 9개 홀에서 예상 밖 선전을 펼쳤다. 첫 홀 드라이버 티샷이 해저드 처리됐음에도 1번과 3번, 8번 홀에서만 보기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6개 홀을 모두 파로 마무리 했다. 이 때까지 같은 조의 박재범과 동타, 김형성에도 불과 두 타 밖에 뒤지지 않은 기록이다. 문제는 바람이 거세진 후반이었다. 10번과 11번, 13번 홀에서 보기를 쏟아낸 박찬호는 파4 14번 홀에서 아웃 오브 바운드(OBㆍOut of Bound)로 크게 흔들리며 트리플보기를 범했다.

15번 홀 보기, 16번 홀 더블보기, 17번 홀 보기를 기록하면서 ‘이대로 무너지나’ 싶었던 그는 마지막 홀에서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 첫 버디를 잡아냈다. 7m 거리의 버디 퍼트가 깔끔하게 떨어졌다. 그는 첫날 성적을 야구에 비교해달라는 말에 “안타를 많이 맞고, 포볼도 적잖이 보내 4∼5점을 내주고 5회를 넘기긴 했는데 투아웃까지 던지다가 강판 당한 심정”이라며 “그래도 마지막 홀에서 버디를 잡은 것은 타자들이 힘을 내줘 패전을 면하게 해준 결과가 아닐까 싶다”라고 전했다. 말이 너무 많아 붙은 ‘투 머치 토커’라는 별명을 의식한 듯 자신을 향해 질문을 쏟아낸 취재진에겐 “투 머치 질문”이라며 농담을 전하기도 했다.

박찬호는 ‘공인 핸디캡 3 이하’ 조건을 충족해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KPGA에선 코리안투어 대회 타이틀 스폰서가 출전 선수 규모의 10% 이하의 프로 및 아마추어 선수를 추천할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는 국가대표 상비군 이상의 경력을 갖추거나 전국 규모 대회 5위 이내 입상, 그리고 공인 핸디캡 3 이하 중 하나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추천 선수로 출전이 가능하다.

박찬호의 골프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났다. 2018년 KPGA 코리안투어 휴온스 셀러브리티 프로암에 유명인 자격으로 출전, KPGA 투어 프로인 김영웅(23)과 한 조를 이뤄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 개막 전에 열린 장타 대결에서는 331야드를 날려 프로들을 앞서는 괴력을 뽐내기도 했다. 커져가는 골프에 대한 애정은 어느덧 지천명(知天命)을 향하는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식을 심어줬다. 최근 TV 예능 채널에 출연해 프로골프가 되겠다는 목표를 밝혔던 그는 국내 2부 투어인 스릭슨 투어 예선에 네 차례 출전, 3회 대회 때는 3오버파 74타(공동 58위)로 선전했다. 박찬호는 “제가 KPGA 코리안투어에 나오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매 대회 나오고 싶은 마음”이라며 “내일은 10오버파 안쪽의 점수에 버디도 2개 정도 하고 싶다”고 목표를 내걸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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