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고인이 소장하던 문화재·미술품 1만1,023건(2만3,000여 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이 중 대부분은 국립중앙박물관(2만1,60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1,400여 점)에 기증된다.
생전 ‘수집광’ 기질이 있던 이 회장의 수집품 목록에는 국보·보물급 국가지정문화재를 비롯해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국보 14건, 보물 46건을 포함한 대규모의 기증품을 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기회로 소장품을 대폭 늘릴 수 있게 됐다. 발굴·매장 문화재에 치중된 소장품 목록에 미술·공예품이 대거 보강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하는 기증품 중에선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수집 경쟁이 치열한 근현대 미술품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 그동안 예산 제약으로 소장 목록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못한 미술관 입장에선 가뭄 속 단비를 맞이한 셈이다.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 작품 15점을 모았다.
정선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비에 젖은 인왕산을 그린 진경산수화로 금강전도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중국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 추세였던 당대의 산수화와 달리 조선 고유의 풍경과 화법을 잘 나타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고려 천수관음보살도> 보물 제2015호
14세기에 그려진 불화로 중생을 구제하는 천수관음이 각기 다른 지물을 들고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천수관음보살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김홍도 <추성부도> 보물 제1393호
조선시대 대표 화가 김홍도가 중국 송대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를 그림으로 표현한 시의도. 죽음을 앞둔 김홍도의 걱정과 허무함이 그림 속에 드러나있다.
<청자 상감모란문 발우 및 접시> 보물 제1039호
고려시대에 동일한 질감과 문양, 형식으로 만들어진 발우 세 점과 접시 한 점. 표면에 국화와 모란이 묘사돼 있다.
<월인석보 권12> 보물 제935호
조선 세조 5년에 간행된 최초의 한글 경전으로 조선 초기 불교 문화의 집대성으로 평가된다.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을 증보해 엮은 책으로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국왕이 직접 저술한 불경이다.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국보 제255호
기원전 3세기 후반 청동기 시대에 주술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유물의 정확한 출토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보존상태가 대단히 양호해 역사적 가치가 크다.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한국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여러 번 갈아치운 김환기의 작품으로 281x568cm 크기의 대작이다. 도자기를 들고 있는 반라의 여인들은 김환기가 1950년대에 자주 그렸던 소재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을 주 소재로 삼은 박수근이 6·25전쟁 이후 그린 작품.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만들어 낸 거친 질감과 소박한 정취가 특징이다.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이중섭이 가장 사랑했던 소재인 소를 그린 작품 중 하나. 가족과 헤어진 후 곧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이중섭이 그린 소 중 한 작품은 2018년 47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엿못> 1920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클로드 모네가 그린 수련 연작 250점 중 하나. 이 작품은 모네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후 그린 작품으로 추상화가 많이 진행됐다.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러시아 태생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화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 푸른 배경과 붉은 꽃의 대비가 강조되며 몽환적인 분위기와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1940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가 정신분석학자 오토 랑크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엄마의 자궁이라는 낙원에서 나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 언급한 달리는 이 작품에 대해 고전주의 양식으로의 회귀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1893
초기 인상주의 창시자로 알려진 카미유 파사로가 점묘법과 유사한 짧은 붓터치로 그린 작품.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폴 고갱 <무제> 1875
후기 인상주의 대표 화가 폴 고갱이 전업 화가로 전향하기 전 그린 작품. 고유의 인상주의 화풍을 익히기 전 시기인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1890
빛과 색채를 강조해 일상, 여성, 아이들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그림은 즐겁고 유쾌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르누아르의 예술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6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를 열고 기증품을 국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지방소속박물관 및 국외 박물관을 활용한 전시도 계획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8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기증품 전시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