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선종... 평소 뜻 따라 각막 기증

입력
2021.04.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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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이 배출한 두 번째 추기경이자 천주교계의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이 27일 오후 10시 15분 노환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90세.

이날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정 추기경은 의료진과 사제들, 비서 수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정 추기경은 마지막 순간까지 찾아온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들, 사제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겸손과 배려와, 인내를 보여줬다고 서울대교구는 전했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해 설 연휴를 지나면서부터 심한 통증을 앓았지만 주변의 권유에도 입원하기를 고사하다가 지난 2월 21일 오후에서야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이튿날 병상에서 염수정 추기경 등 사제들을 만난 고인은 “모든 이가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평소 천주교계의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정 추기경의 뜻에 따라서 선종 후 각막기증이 이뤄졌다. 고인은 입원 이전부터 수술이나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주변에 밝혔다. 스스로 고령임을 고려해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다. 고인은 이미 2018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혔고 계획서에는 고령이어서 장기를 기증할 수 없다면 안구만이라도 연구용으로 사용해 달라는 뜻을 담았다.

정 추기경의 빈소는 명동대성당에 마련됐다. 서울대교구는 장례 절차가 준비되는대로 알릴 계획이다.

고인은 1931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 공대 화공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고 195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다. 1961년 사제품을 받아 성직자가 됐고 39세를 맞은 1970년에는 국내 최연소 주교에 서품됐다. 이후 28년간 청주교구장을 지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는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했다.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인을 추기경으로 임명하면서 한국 천주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 임명 이후로 37년 만에 두 번째 추기경을 맞았다. 고인은 주교 서품 당시 정했던 사목 표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을 추기경이 돼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정 추기경은 교회법 전문가로 교계 안팎에서 이름이 높았다. 가톨릭교회 교회법전의 한국어판 작업을 주도하고 해설서를 쓴 일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신학교 때부터 번역하고 저술한 책은 50권이 훌쩍 넘는다. 정 추기경은 2012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로 입원하기 전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신학대학) 주교관에 머물며 저술활동에 매진해왔다.


김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