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정간섭’이란 말이 국제사회에 빈발하고 있다. 도처에서 국가 간 충돌의 최전선에 이 말이 등장한다. 신장, 티베트, 홍콩에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들이대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다른 나라를 턱으로 부리고, 내정을 간섭해선 인심을 얻지 못한다”며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미일 정상은 ‘대만해협 평화’를 거론해 ‘하나의 중국’을 위협하고, 중국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맞선다. 러시아 야권지도자 나발니와 관련한 미국의 경고,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공방도 같은 양상이다. 한미 간에도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두고 내정간섭 논란이 있다.
내정간섭 키워드가 난무하는 건 국제정치가 긴박하고 거칠게 움직이는 격동기라는 증거다. 미중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감정적으로 더 들끓었다. 중국은 우한(武漢)의 바이러스가 그 지역을 방문했던 미군에 의해 전파됐을 수 있다고 했고, 트럼프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미얀마 정세도 미중이 얽혀 있음은 물론이다. 애초부터 미국은 민주화를 지원해 친미정권을 수립하거나, 인도-미얀마-태국을 군사벨트로 연결해 중국의 남하를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반면 미얀마 군부는 중국 지원을 받지만 현지에선 경제적으로 중국의 속국화를 우려하는 반중 정서도 만만치 않다.
미중 간 국력 충돌을 한국인은 어떻게 인식할까. 과거엔 미국 위주 세계관이 주류였지만 중국의 급성장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친중(親中)’ 정서가 늘어나면서 여론이 양분돼 있다. 14억 내수시장과 경제적으로 깊숙이 엮여 있다는 현실을 상수로 두는 식이다. ‘미국우선주의’와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무역전쟁으로 번지면서 한국엔 곤혹스러운 현실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미중 간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은 시기적으론 박근혜 정부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15년 9월 3일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망루에서 인민해방군의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지켜봤다. 이 장면은 한국인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임기 초반 박근혜 정권은 한중관계로 한미관계를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파격적이었지만, 이후 사드 문제를 비롯해 갈등 사안마다 미국에 치우치면서 원칙 없는 대중전략만 드러낸 채 끝났다.
바이든 시대 신냉전은 안보동맹보다 대처하기 힘든 기술동맹이 핵심이다. 산업의 생존과 국가 미래가 달려 있다. 친중 성향 인사들은 경제관계만 내세울 뿐 한국과 다른 체제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의 특수성만 강조하는 ‘내재적 중국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다른 나라 것을 무단으로 베끼는 짝퉁에 영토 침해, 김치까지 갈취하는 문화역사공정, 소비시장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굴복시키는 중국의 무지막지한 횡포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바이든의 미국도 다르지 않다. 가치로 동맹을 압박하고, 국민의 건강·생존권이 달린 백신마저 전략무기화 했다.
이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한가한 등식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19세기 말 ‘화려한 고립’(splendid isolation)을 누린 영국이 아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의 약효가 끝나가고 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마지노선이 임박한 느낌이다. 해방 정국에 버금가는 국론 분열의 무법과 혼란이 보인다. 그 사이 미중 양쪽 모두 한국을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