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기증자가 의사들에게 던지는 당부

입력
2021.04.27 19:00
25면


지난 4월 19일 필자가 근무하는 고려대학교에서는 ‘감은제(感恩祭)’를 거행하였다. 감은제는 의학교육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신 고인을 기리는 행사이다.

고려대학교는 1982년부터 시신 기증을 받기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시신 기증 등록을 한 분은 약 7,800명, 실제로 사후에 시신을 기증하신 분은 1,376명이다. 우리는 교정에 감은탑을 세우고 고인들의 이름을 새겨, 고인들의 숭고한 뜻을 지켜나가고 있다.

의학은 사람들이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오래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정확히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해부는 몸의 구조를 공부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의과대학에서는 필수과정으로 인체 해부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가 되려는 이들은 반드시 해부를 해야 한다고 정한 것은 1832년 영국의 '해부법'이 처음이다. 우리나라도 1962년 '시체해부보존법'을 제정한 이래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은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 (약칭: 시체 해부법)'로 해부에 관한 대상, 과정 등을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신을 해부한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시신을 해부하였다는 기록은 이익의 성호사설에 임진왜란 때 유의였던 전유형이 시신 3구를 해부하였다는 내용이 처음이다. 1896년 12월 1일 자 독립신문에는 ‘못된 의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의원은 당시 의사를 부르던 말이다. 못된 의원이란 사람을 해부한 적이 없어,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이 때문에 병을 치료하는 중에 사고를 내어 환자의 생명을 잃게 하는 의사를 말한다. 이 기사로 미루어볼 때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들어오던 시기에 이미 해부를 통한 인체 구조에 대한 지식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인이 자신의 몸을 해부하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필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 희생이다. 해부에 사용되는 모든 시신은 생전에 뜻을 정하고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기증을 한 분들이다. 몸은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귀한 것이다. 그런 귀한 것을 의학의 발전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숭고한 결단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현대 의학은 이런 분들의 희생을 거름 삼아 발전한 것이다. 의학 발전을 위한 희생의 중요성을 몸으로 가르치고 있다.

둘째, 인내와 용서다. 시신을 해부하면서 몸을 째고 가르게 된다. 만일 자신의 몸을 가르고 짼다고 생각해 봐라.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하고 괴로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 한마디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훗날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을 겪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자신들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며 오로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힘쓰라고 묵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셋째, 비밀 지키기다. 고인들은 해부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절대로 남에게 전하지 않는다.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의료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윤리적 원칙이다. 절대로 남의 이야기를 전하지 말고 지켜 신뢰를 쌓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넷째, 생명을 살리기 위해 힘쓰라는 것이다.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생명도 받아들일 수 있고, 왜 생명이 귀한지 알게 된다. 고인들은 학생들에게 죽음을 접하는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실력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라고 말한다.

해부는 단순히 몸의 구조와 의학 용어와 같은 전문 지식을 익히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고인들은 몸으로 희생정신, 인내와 포용심, 그리고 비밀 지키기와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윤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런 원칙이 어찌 의료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고인들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